경찰이 사건 배당 단계부터 수사 종결 이후까지 전 과정을 점검하는 수사체계 개편에 나선다. 사건이 특정 수사관에게 임의로 배정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무작위 배당을 강화하고, 전국 경찰서에는 외부 법률가를 중심으로 한 수사심사관을 배치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검찰 수사권 폐지에 따라 경찰의 사건 처리 권한이 커지는 상황에서 수사관 개인의 판단에 의존하는 구조를 줄이고 별도의 내부 통제 장치를 두겠다는 취지다.
경찰청이 추진하는 수사개혁 방안의 첫 단계는 사건 배당 방식이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 KICS에 접수되는 사건을 무작위로 배당하는 원칙을 강화해 사건 담당자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편향이나 외부 개입 가능성을 차단한다. 현재도 무작위 배당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예외적인 수동 배당이 이뤄지는 과정 등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는 방향이다.
사건 관계인이 담당 수사관을 교체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기피신청 절차도 강화한다.
수사관과 사건 관계인의 이해관계나 수사의 공정성을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을 경우 사건 관계인이 기피를 신청하면 별도의 심사를 거쳐 담당자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수사 결과에 불만이 있다는 이유가 아니라 수사의 공정성을 확인하는 절차로 운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국 경찰서에는 수사심사관을 배치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수사심사관은 외부 법률가를 중심으로 구성해 일선 수사관이 처리하는 사건의 법률 판단과 증거 수집 과정 등을 점검한다. 수사 과정에서 법률적 쟁점에 대한 의견을 제공하고 사건이 장기간 처리되지 않거나 충분한 수사 없이 종결되는 문제를 걸러내는 역할도 맡는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범위가 커지는 만큼 수사 담당자와 지휘라인 외에 별도의 법률 전문가가 사건을 들여다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중요 사건에 대한 간부들의 직접 수사도 확대된다.
총경과 경정급 간부가 중요 사건에 직접 참여하도록 해 일선 수사관에게만 책임이 집중되는 구조를 바꾸고 지휘 책임을 강화한다. 사건의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법률적 판단이 복잡한 경우 수사 초기부터 간부가 직접 내용을 파악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수사팀장의 역할도 커진다. 사건 진행 상황과 증거 수집, 수사 방향을 중간 단계에서 확인하도록 해 사건 담당자가 사실상 혼자 판단하고 처리하는 상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사건이 끝난 뒤 다시 들여다보는 사후 점검도 확대한다.
장기 미제 사건과 경찰이 입건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건 등을 대상으로 처리 과정이 적절했는지 확인하는 체계를 강화한다. 사건이 종결됐다는 이유로 관리 대상에서 완전히 빠지는 것을 막고 부실 처리 정황이 발견되면 다시 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수사 인력도 대폭 보강한다.
경찰은 올해 하반기 비수사부서 등의 인력을 조정해 수사부서에 약 2000명을 추가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1년 동안 보강된 인력까지 합하면 수사 인력 확대 규모는 약 3900명에 이른다.
인력 확충은 수사권 확대에 따라 예상되는 업무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사건이 장기간 방치되는 문제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수사관 한 명이 지나치게 많은 사건을 맡으면 사건별 수사에 투입할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경찰의 수사체계 개편이 추진되는 시점에는 최근 제주에서 불거진 실종사건 허위 종결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실종자와 실제 연락하지 않고도 안전을 확인한 것처럼 처리한 뒤 사건을 종결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일선 수사관의 사건 처리 과정을 상급자가 제대로 확인했는지를 둘러싼 문제가 불거졌다.
같은 경찰관이 담당했던 다른 실종사건에서도 유사한 허위 종결 혐의가 확인되면서 개인의 일탈뿐 아니라 이를 걸러내지 못한 지휘·감독 체계까지 점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경찰의 기강 해이와 무책임 문제를 지적하며 "권한의 크기만큼 책임도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에는 경찰 개혁 방안과 개혁 기구 구성에 대한 검토를 주문했다.
경찰 수사체계는 형사사법제도 개편과 함께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수사의 시작과 진행뿐 아니라 사건을 끝내는 권한까지 경찰에 집중될수록 잘못된 판단을 중간에서 발견하고 바로잡을 장치의 중요성도 커진다.
무작위 배당과 수사관 기피신청, 외부 법률가 수사심사관, 간부 직접 수사와 사후 점검까지 여러 단계의 통제 장치가 마련되는 이유다. 다만 수백만 건에 이르는 경찰 사건을 외부 수사심사관이 어느 범위까지 검토할지, 심사 결과가 실제 수사 과정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서 풀어야 할 문제다.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