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정부가 검토해온 용산공원 주택 공급 대신 강남구 탄천물재생센터 부지에 최대 1만3000가구를 짓는 방안을 내놨다. 물재생센터를 이전한 자리에 주택과 첨단산업 시설을 함께 배치하는 방식이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 시장이 26일 다시 만나면서 서울 주택 공급 부지를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협상이 분기점을 맞게 됐다.
오 시장은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혁신포럼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강남구 탄천물재생센터 부지를 용산공원의 대체 주택 공급지로 제시했다.
오 시장은 "용산공원에서 지금 논의되는 몇 가지 부지와 비교해 볼 때 그 용량 자체도 더 클 뿐만 아니라 주거환경도 훨씬 훌륭하다"며 탄천물재생센터 활용 방안을 설명했다.
서울시 구상은 탄천물재생센터를 다른 곳으로 이전한 뒤 확보되는 약 40만∼50만㎡ 규모의 부지를 개발하는 방식이다.
전체 부지 가운데 절반가량에는 주택을 짓고 나머지에는 공원과 피지컬 인공지능, 연구개발 시설 등을 조성해 가칭 "동남권 청년 특화 산업단지"로 개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공급 규모는 최소 1만가구에서 최대 1만3000가구다.
단순히 아파트만 건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자리와 주거를 한곳에 배치하는 직주근접형 개발이 서울시가 내세우는 핵심이다. 강남권에 첨단산업과 연구개발 시설을 유치하고 인근에 청년층을 위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오 시장은 "청년들이 일자리와 주거가 직결될 수 있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이번 구상이 용산공원 주택 공급 논란 이후 급하게 만들어진 대체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탄천물재생센터는 지어진 지 약 40년 된 하수처리시설로 서울시는 2년 전부터 시설 현대화와 이전 방안을 검토해왔다. 오 시장도 이미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관련 용역을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정부와 서울시가 충돌한 출발점은 용산공원이다.
정부는 서울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용산공원 일부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특히 용산 어린이정원 약 30만㎡ 부지가 후보지로 거론됐다.
이 부지를 고밀 개발하면 1만가구 이상을 공급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왔지만 서울시는 용산공원을 국가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기존 계획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해왔다. 용산 지역에서도 반발이 이어졌다.
정부도 용산공원을 당장 신규 공공주택 공급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서울시와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공급 대상에 넣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서울시의 탄천물재생센터 카드를 받아들일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탄천 부지는 강남권이라는 입지가 가장 큰 특징이다. 대규모 주택 공급이 쉽지 않은 강남에 1만가구가 넘는 물량을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다면 서울 전체 주택 공급 측면에서도 상당한 규모다.
반면 실제 공급까지 넘어야 할 절차도 만만치 않다.
현재 운영 중인 물재생센터를 곧바로 철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부지에 처리시설을 먼저 건설하고 정상적으로 가동한 뒤 기존 시설을 철거해야 주택 개발에 들어갈 수 있다.
서울시는 기존 물재생센터 이전에 4∼5년, 이후 주택 건설에 다시 4∼5년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행정 절차 단축에 협조할 경우 전체 사업 기간을 1∼2년가량 줄일 수 있다는 계산도 내놓고 있다.
새로운 물재생시설을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도 풀어야 할 문제다. 대규모 하수처리시설인 만큼 이전 부지 선정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의 협의가 필요하고 관련 행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오 시장과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26일 만나 서울 주택 공급 방안을 다시 논의한다. 지난 20일 회동에서 용산공원 활용 문제를 놓고 입장 차를 확인한 지 엿새 만이다.
이번 회동에서는 탄천물재생센터뿐 아니라 서울시가 제안한 다른 대체 부지도 함께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는 국군재정관리단과 한국은행 생활관 등 용산공원 주변에 흩어진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도 정부에 제시해왔다.
500가구 이하 재개발·재건축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자치구에 넘기는 문제도 양측의 쟁점이다.
정부와 여당은 소규모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일부 권한을 기초자치단체장에게 이양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반대하고 있다. 오 시장은 정비사업의 상당수 절차가 이미 구청장 권한이라며 정비구역 지정 권한까지 넘기는 방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서울시 모두 서울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공급 장소와 속도다.
용산공원 개발에 반대해온 서울시가 강남권에 최대 1만3000가구라는 구체적인 대체 물량을 제시하면서 논의의 초점도 탄천으로 옮겨가게 됐다. 다만 물재생센터 이전부터 실제 입주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정부가 요구하는 신속한 주택 공급과 서울시의 장기 개발 구상을 어떻게 맞출지가 이번 협의에서 풀어야 할 문제다.
정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