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칸 현지 시각으로 16일 오전 1시를 넘긴 시각,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인 영화 <군체>가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최초 공개됐다. 당초 예정됐던 시간보다 약 30분 지연된 상영이었으나 2300여 석의 객석은 가득 찼다. 상영이 종료된 직후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연상호 감독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꿈에 그리던 칸 영화제에서 신작을 선보이게 되어 영광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것 같다는 연 감독의 발언이 끝나자 관객석의 환호는 더 커졌다. 현장에는 주연 배우 전지현과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이 감독과 나란히 서서 관객들의 호응에 화답했다. 상영 전 레드카펫 행사에서는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이 깜짝 등장해 출동한 제작진과 배우들을 직접 맞이하기도 했다.
이번 신작은 <부산행>과 <반도>를 통해 K-좀비물의 지평을 열었던 연 감독이 다시금 꺼내 든 좀비 소재 영화다.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특정 목적을 가진 인물이 의도적으로 감염 사태를 촉발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도심의 대형 쇼핑몰 겸 초고층 빌딩인 둥우리 빌딩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주 무대다.
이야기의 축은 생물학 박사 영철이 건물 내부에 바이러스를 살포한 뒤 112에 자진 신고를 하면서 움직인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실험이 아닌 생물학적 테러라고 규정한 영철은 본인의 몸에 이미 항체가 생성돼 있어 자신이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백신이라는 주장을 남긴 채 연락을 끊는다. 빌딩은 순식간에 폐쇄되고 생명공학과 교수 세정과 보안요원 현석 등 내부에 고립된 평범한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구조다.
영화의 긴장감을 주도하는 핵심 요소는 개별 개체들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인지 능력을 업데이트하는 좀비들의 특성이다. 감염자들은 일정 순간 일제히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하며 집단 지성을 동기화하는 행동을 보인다. 초기에는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인간 이하의 지능으로 움직이던 생명체들이 학습을 거듭하며 직립 보행을 하고, 생존자들의 방어 전략을 모방해 포위망을 좁혀오는 지능적인 액션이 연출됐다. 이 기괴한 군무를 구현하기 위해 실제 20여 명의 전문 무용수들이 촬영에 투입됐다.
악역 영철을 연기한 구교환은 독특한 웃음기를 유치한 채 좀비 무리를 통제하는 여유로운 태도로 서사의 몰입감을 더했다. 최동훈 감독의 <암살>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며 처음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은 전지현은 리더 역할을 맡아 안정적인 연기 톤으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다만 주변 생존자 인물들의 캐릭터 설정과 전개 방식이 기존 재난 영화의 전형적인 구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해 다채로운 인간 군상의 깊이를 보여주는 면에서는 다소 평면적이라는 현지 평도 흘러나왔다.
상영관을 나선 외신과 관객들의 반응은 엇갈리는 분위기다. 초반부 사태가 전개되는 속도감과 진화하는 좀비들이 선보이는 일사불란한 군무 액션 시퀀스는 오락적 재미로서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반면 서사의 전개 과정이 중반 이후 다소 반복적이고 전작 <부산행>이 보여줬던 감정적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 세계 120여 개국에 선판매를 완료한 <군체>는 칸에서의 첫 공개 일정을 마무리하고 오는 21일 국내 극장가에 걸린다.
해외 영화제에서의 호평과 환호가 국내 흥행의 보증수표가 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진화한 집단 지성 좀비라는 새로운 설정이 한국 관객들에게 얼마나 직관적인 오락성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가 향후 흥행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