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탁구의 혼합복식 간판 임종훈(한국거래소)과 신유빈(대한항공) 조가 세계 최강 중국 조를 격파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국제 탁구 연맹(ITTF) 월드 테이블 테니스(WTT) 파이널스 혼합복식 부문에서 한국 선수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올랐다. 이들은 13일 홍콩 콜리세움에서 개최된 WTT 파이널스 홍콩 2025 혼합복식 준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1위인 린스둥–콰이만(중국) 조를 게임 스코어 3-1(6-11, 11-6, 11-2, 14-12)로 제압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 승리는 이번 대회에서 중국 선수가 타국 선수에게 당한 첫 번째 패배이자, 한국 탁구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대이변'으로 평가된다.
경기 시작은 세계 1위 조의 압박 속에 다소 무거웠다. 1게임에서 임종훈-신유빈 조는 3-3까지 접전을 펼쳤으나, 린스둥의 날카로운 연속 공격에 흐름을 내주며 6-11로 첫 게임을 내주고 말았다. 중국 특유의 빠르고 정확한 타이밍의 전개가 살아나면서 한국 조는 수세에 몰리는 듯했다. 그러나 2게임 중반부터 전세가 급격히 전환되기 시작했다. 3-5로 뒤처지던 순간, 벤치에 있던 함소리 코치가 요청한 타임아웃 이후 임종훈의 강력한 포어 톱스핀과 신유빈의 효과적인 백드라이브가 연이어 득점으로 연결되며 순식간에 6-5 역전에 성공했다. 이어진 랠리에서 콰이만의 범실을 유도하며 결국 11-6으로 2게임을 가져오자, 중국 벤치에는 눈에 띄게 경직된 기색이 역력했다.
3게임은 한국 조의 완벽한 경기력이 돋보인 압도적인 승리였다. 임종훈의 왼손잡이 공격 루트와 신유빈의 오른손 드라이브가 최상의 조화를 이루며 초반부터 7-1까지 점수 차를 벌렸다. 특히 린스둥이 서브 범실까지 기록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임종훈-신유빈 조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11-2로 게임을 마무리 지었다. 세계 1위 조를 상대로 단 2점만을 허용하며 거둔 이례적인 압승은 현지 경기장을 술렁이게 만들었으며, 중국 조의 당황스러움을 가중시켰다.
승부의 분수령은 마지막 4게임이었다. 중국 조는 초반 4-0으로 치고 나가며 반격을 시도했으나, 한국 조는 흔들림 없는 침착한 플레이로 맞섰다. 연속 득점으로 4-3까지 따라붙은 임종훈-신유빈 조는 이후 치열한 랠리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며 7-7 동점을 만들었다.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9-9 상황에서 신유빈의 결정적인 포어드라이브가 성공하며 매치 포인트를 먼저 확보했다. 이후 듀스가 세 차례나 반복되는 숨 막히는 혈투가 전개되었으나, 마지막 순간 콰이만의 리시브가 테이블 밖으로 벗어나면서 14-12로 긴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로써 임종훈-신유빈 조는 한국 탁구 혼합복식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승리 중 하나를 기록했다.
이러한 성과는 단지 일회성 이변이 아니었다. 임종훈-신유빈 조는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도 놀라운 기세를 보여주었다. 첫 경기에서 브라질의 휴고 칼데라노–브루나 다카하시 조를 3-0 완승으로 제압한 데 이어, 일본의 차세대 주역인 마쓰시마 소라–하리모토 미와 조까지 3-0으로 완파했다. 마지막 조별리그 경기에서도 스페인의 알바로 로블레스–마리야 샤오 조를 다시 한번 3-0으로 꺾으며 단 한 게임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3전 전승으로 조 1위 자리를 굳히고 4강에 진출했다.
임종훈-신유빈 조는 이미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2024 파리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탁구 혼합복식 사상 최초의 올림픽 입상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린 검증된 조합이다. 다만 파리 올림픽과 도하 세계선수권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중국의 왕추친–쑨잉사 조에 막혀 정상 등극에는 실패했다. 올림픽 이후 잠시 파트너 교체가 시도되기도 했으나, 다시 재결성된 이들은 이번 WTT 파이널스에서 절정의 호흡과 기량을 선보이며 그 선택의 정당성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특히 이번 중국전 승리는 대회 직전까지 중국 선수들이 타국 선수들을 상대로 13전 전승을 이어가던 '난공불락'의 흐름을 끊어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매우 크다.
신유빈은 최근 청두 혼성단체 월드컵에서 무릎 인대 부상으로 결장했던 아픔을 딛고 홍콩 무대에 섰다. 그녀가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민첩한 움직임과 흔들림 없는 집중력은 부상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임종훈 역시 '복식 장인'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경기 운영 능력, 효율적인 위치 선정, 위기 관리 능력 등에서 노련함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두 선수의 완벽에 가까운 호흡은 조별리그의 퍼펙트 3연승을 넘어, 세계 최강 중국을 꺾는 대역전극으로 정점에 달했다.
임종훈-신유빈 조는 곧이어 열릴 혼합복식 결승전에서 왕추친–쑨잉사(중국) 조와 마쓰시마 소라–하리모토 미와(일본) 조의 준결승전 승자와 격돌하여 우승 트로피를 놓고 최종 승부를 겨룬다. 전력상 왕추친-쑨잉사 조와의 재대결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 대회에서 한국 조는 이미 '불가능'이란 단어를 지워냈기에 그들의 최종 행보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