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서면 제청한 것을 놓고 청와대와 대법원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청와대는 사전 협의 없이 이뤄진 "헌정사 초유의 일방 통보"라고 규정했고, 대법원은 민정수석실과 제청 방식을 협의했다는 입장이다. 청와대가 손 후보자의 임명 절차를 밟지 않고 다시 제청하도록 요구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면서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갈등이 헌법상 제청권과 임명권 문제로 번졌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손 부장판사를, 오는 9월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임명 제청했다. 통상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만나 후보자를 제청해 온 방식과 달리 이번에는 대면 없이 서면으로 절차를 진행했다.
두 후보를 둘러싼 청와대의 입장은 다르다. 김성수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대법원과 청와대 사이에 사전 협의가 이뤄졌지만 손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조율이 없었다는 것이 청와대 측 설명이다. 청와대는 대법원이 손 부장판사를 제청한 당일인 18일에야 그의 이름을 대법관 후보로 처음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21일 이번 제청을 "협의를 건너뛰고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하지 않은 일방 통보 절차"라고 비판했다. 이어 기존 관례에서 벗어난 전례 없는 상황이라며 1987년 이후 대법관 제청과 임명 관례, 관련 법률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특히 문제 삼은 것은 손 부장판사 제청 과정이다. 청와대 설명에 따르면 대법원 측은 18일 민정수석실에 김성수 부장판사와 손봉기 부장판사를 함께 제청하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협의가 이뤄지면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만날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청와대는 이에 "협의가 되면 그때 만나자"는 취지로 답했다고 설명했다. 후보자에 대한 조율을 더 진행하자는 뜻이었는데 대법원이 이후 별도의 합의 없이 두 후보를 서면으로 제청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설명은 다르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직접 만나 제청하려 했지만 면담 기회를 얻지 못했고, 서면 제청 방식에 대해서도 청와대 민정수석 측과 협의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청와대는 이를 즉각 반박했다. 성 수석은 대법관 제청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을 논의한 적은 있지만 "서면 제청 여부 등 구체적인 제청 방식에 대해서는 협의 자체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면담을 청와대가 거부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손 부장판사 제청을 둘러싼 이견은 수개월 전부터 이어졌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후보군이 압축된 이후에도 제청이 장기간 이뤄지지 않았고, 청와대와 대법원이 적임자를 놓고 의견을 좁히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손 부장판사의 제청은 후보군 압축 이후 약 7개월 만에 이뤄졌다.
청와대는 손 부장판사에 대한 임명 절차를 그대로 진행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조 대법원장에게 새로운 후보자를 다시 제청하도록 요구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라 있다. 성 수석은 재제청 요구 가능성에 대해 "그런 방안에 대해서도 숙고 중"이라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공개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그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면서 청와대가 제청을 "일방 통보"라고 규정한 데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에게 "수고 많으십니다"라고만 답했다. 청와대가 제청을 반려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현행 헌법은 이 같은 충돌이 발생했을 때의 후속 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한다.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각각 부여했지만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과거 대법관 인선에서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놓고 사전에 의견을 조율한 뒤 제청과 임명 절차를 진행해 이런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번에는 사전 협의가 있었는지부터 양측의 설명이 엇갈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기존 관례를 깨고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법조계 일각에서는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부여한 만큼 사전 협의라는 관례를 근거로 제청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손봉기 후보자의 임명 여부를 넘어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충돌했을 때 이를 어떤 절차로 풀어야 하는지가 이번 사안의 핵심으로 남았다. 청와대가 실제 재제청을 요구할 경우 그동안 관례로 조정해온 두 헌법기관의 권한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최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