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의사와 한의사로 이원화된 현행 의료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의료일원화’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2030년까지 통합교육과정을 시범 운영하고 2034년까지 통합면허 체계로 전환하는 내용의 중장기 로드맵도 제시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대한의사협회 전성훈 법제이사와 대한한의사협회 윤성찬 회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의료일원화에 대한 양 단체의 입장을 확인했다.
당초 의료계에서는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이 참고인으로 예정됐으나 전성훈 법제이사가 대신 출석했다.
서 의원이 제시한 의료일원화 구상은 기존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를 즉시 통합하는 방식보다는 대학 교육과 학제를 먼저 통합한 뒤 장기적으로 국가면허체계를 하나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로드맵에는 2030년까지 통합교육과정을 시범 운영하고 2034년까지 통합면허 체계로 전환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기존 면허권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신규 의료인력부터 통합 교육을 적용하는 방식이 주요 논의 대상으로 제시됐다.
서 의원은 “우리나라는 같은 환자를 두고 의사 면허와 한의사 면허,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 의학과 한의학이 따로 움직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이원적 의료체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이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을 겪고 동일 질환으로 중복 진료를 받거나 진료 정보가 연계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지역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면허체계 간 칸막이로 인력 활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사용과 진료 범위를 둘러싼 의사와 한의사 직역 간 법적 분쟁과 갈등도 의료일원화 논의가 필요한 이유로 제시됐다.
서 의원은 의료체계와 진료정보의 분절, 의료인력과 교육자원의 중복, 직역 갈등의 반복, 미래 의료와의 융합 어려움 등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일원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교육과 학제를 중심으로 한 중장기 의료일원화 논의에 조건부로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는 “의협은 학제 일원화 또는 교육 일원화를 통한 중장기적인 일원화 논의에는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통합교육이 단순히 일부 과목을 추가로 이수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 이사는 “현대의학에서 요구되는 근거 기반의 교육과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공인받을 수 있는 현재 의학교육 수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 의원이 기존 면허를 직접 통합하기보다 학교와 교육과정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데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자 전 이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대한한의사협회 역시 교육 통합부터 시작하는 단계적 의료일원화 논의에 참여할 뜻을 밝혔다.
윤성찬 한의협 회장은 “어느 한쪽으로의 흡수 통합이 아니라 기존 한의사의 지위와 진료권을 인정하고 교육 통합을 먼저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원칙은 한의사협회가 생각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의료일원화가 의학 중심의 흡수 통합 방식으로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회장은 “통합은 의학과 한의학이 상호 존중의 태도로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설계해야 한다”며 “기존 한의사의 역할이 축소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논의 과정의 부수적 조건이 아니라 출발점부터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의료일원화 논의가 현재 국민이 겪는 불편을 해결하지 않고 미루는 명분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지난 수십 년간 일원화 논의는 번번이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 문제를 뒤로 미루는 이유로 사용돼 왔다”며 “법원이 이미 판단을 내린 문제가 이번에도 일원화되면 해결된다는 말로 또 미뤄진다면 논의는 시작부터 신뢰를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느 한쪽을 없애는 통합이 아니라 양쪽을 더하는 통합으로 간다면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도 가보지 못한 통합의료 모델을 완성하는 첫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도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검토하기로 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회적 논의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고 필요하면 용역 연구와 결합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의사인력 제도개선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져 연말까지 9차례 정도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앞으로 민간에서의 논의도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향후 의료일원화 논의에서는 통합교육의 기준과 방식, 기존 면허 보장 범위, 한의사의 진료권, 통합면허의 자격 기준 등을 둘러싸고 상당한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30년 통합교육 시범 운영과 2034년 통합면허 전환이라는 구체적인 일정이 제시된 만큼 정부와 국회, 의사단체, 한의사단체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낼지가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백설화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