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 사이 중동에서 고조된 지정학적 위기가 결국 월요일 국내 증시를 덮쳤다. 23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0.98% 내린 2,992.20에 거래를 시작하며, 개장과 동시에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3,000선이 힘없이 무너졌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결의 소식이 전해지며 '오일 쇼크' 공포가 시장을 지배했고, 외국인을 중심으로 한 투매 물량이 쏟아지며 '검은 월요일'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번 증시 급락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지난 주말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한 데 이어, 이란 의회가 세계 원유 수송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결의했다는 소식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초대형 악재로 작용했다. 실제 봉쇄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이러한 위기감만으로 국제 유가는 폭등세를 보일 수 있으며, 이는 곧바로 세계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 우려로 이어진다.
특히 원유의 해외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의 특성상, 이번 사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치명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입 원유의 7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유가 급등은 에너지 비용 상승과 기업들의 생산비용 증가, 그리고 소비자물가 폭등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촉발할 수 있다.
이날 개장과 동시에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은 동반 '팔자'에 나서며 지수를 끌어내리고 있다. 중동 리스크가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극대화시키면서, 한국과 같은 신흥국 시장에서 자금을 빼내려는 움직임이 거세진 것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역시 급등하며 개장하는 등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업종별로는 항공, 해운, 무역 등 유가 상승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업종들의 낙폭이 두드러지고 있다. 반면 일부 정유주와 방산 관련주는 지정학적 위기 고조에 따른 반사 이익 기대감에 강세를 보이는 등 종목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코스닥 지수 역시 1% 넘게 급락하며 출발하는 등 투자 심리는 시장 전반에 걸쳐 빠르게 냉각되는 모습이다.
증권가에서는 당분간 극심한 변동성 장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기 전까지는 섣부른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투자자들은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며 중동 사태의 전개 과정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