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업무용 PC 하드디스크를 대량으로 파쇄하던 도중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관계자들에게 제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하여 "잘못된 절차"임을 인정하면서도, 하급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사고는 오늘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통위 내 한 사무실에서 포착되었다. 현장에 진입한 국회 과방위 관계자와 경찰은 책상 위에 널려 있는 구겨지거나 찢긴 상태의 수십 개의 파쇄된 하드디스크를 발견했다. 파쇄 업체 관계자는 과방위 관계자들에게 "파기해야 되니까 (뜯는 것)"라고 설명했다. 이날 방통위가 처분하려던 컴퓨터는 130대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 측은 위법 소지에 대한 질문에 "3년마다 내구연한이 다 된 제품들을 폐기하고 있다"며 내부 공문을 제시했다. 해당 공문에는 수거 심의 절차를 거쳐 결재가 완료되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파기 작업 절차를 들여다보면 여러 수상한 점이 드러났다. 파쇄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용역 의뢰는 전화로만 진행되었으며, 정부 관련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계약서나 공문, 과업지시서 같은 공식적인 서류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한다. 파쇄 업체 관계자는 "전화로 연락을 받았고, 구두로 일정을 잡고 업무 진행을 했다"며, "계약서나 이런 것들은 별도로 이번에는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더욱이 방통위가 용역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대신, 하드디스크 파쇄 후 남은 PC 부품들을 수거해가라는 제안을 한 것도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방통위의 내부 공문에는 해당 폐기 작업의 비용이 '무료'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는 방통위가 예산 사용 등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 국회 과방위 회의에 출석한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잘못된 절차"라고 인정하면서도, "과장 전결이라고 했는데 담당자가… 저도 그렇지 않아도 많이 꾸짖었습니다만"이라고 말하며 하급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최민희 국회 과방위원장은 "이게 말이 됩니까? 이거 말 안 되죠? 이진숙 위원장, 말 안 되죠?"라고 질책했고, 이 위원장은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이번 대량 하드디스크 파쇄 작업이 외부로 나가는 돈이나 문서 없이 진행된 점은 방통위가 예산 사용 내역 등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는 의혹을 증폭시킨다. 또한, 파쇄 대상이던 저장장치에 이진숙 위원장의 위법적인 '2인 체제' 관련 문건들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증거 인멸 의혹까지 함께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진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용산 대통령실 PC 파기 혐의로 고발되어 공수처와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방통위의 하드디스크 파쇄 사건은 더욱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