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으로부터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한 정책적 승인과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나, 대통령실은 이 중대한 합의가 실질적으로 현실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법적·절차적 산이 많음을 인정했다. 한-미 양국이 공동 설명자료를 통해 정책적 방향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되지만, 핵연료 조달 문제 해결을 위한 별도 협정 체결, 미국 행정부 내 이견 해소, 그리고 미 의회의 승인 절차 등 수많은 변수가 남아있어 후속 협의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지난 14일 발표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회담 공동 설명자료'의 안보 분야에서는 두 가지 핵심 합의가 주목받았다. 첫째, 미국이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지지하겠다는 약속이다. 둘째,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는 내용이다. 핵추진 잠수함은 기존 디젤 잠수함에 비해 월등한 작전 능력과 장기간 잠항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 정부가 30년 넘게 숙원 사업으로 추진해온 과제였다. 이러한 잠수함 건조 승인과 더불어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 협정의 틀 안에서 한국의 핵주권을 확대할 수 있는 협상에 미국이 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3천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제공한 한국이 비확산 제재 속에서 얻어낸 최대의 성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번 공동 팩트시트가 '총론적 합의'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며, 실질적인 이행까지는 상당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이 과제로 남았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두 문제에 대한 방향이 정해졌을 뿐이며, 후속 협의가 어떻게 이행될지에 대해 많은 협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명확히 했다. 합의문에 명시된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와 핵추진 잠수함 연료 조달 관련 문구들이 "지지"와 "협력" 등 다소 모호한 표현에 그치고 있어, 세부적인 이행 방안에 대한 합의는 모두 후속 협상으로 넘어갔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특히 우라늄 농축 및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에 대해 위 실장은 "우리가 권한을 가질 수 있는 프로세스를 시작하는 데 동의하고 지지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하며, 권한의 범위와 내용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수적임을 확인했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 및 운영을 위한 핵연료 확보 문제는 별도의 협정이 필요한 가장 큰 난관으로 꼽힌다. 현재 한-미 원자력 협정은 그 적용 범위가 '평화적 이용'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군사적 목적으로 추진력을 갖는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 공급을 위해서는 협정을 개정하거나 별도의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 역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한-미 원자력 협정은 그것대로 개정해 나가고, 핵추진 잠수함 연료 확보 부분은 별도로 미국 측과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히며 이 같은 절차적 분리를 공식화했다. 이는 호주가 지난 2021년 핵추진 잠수함 기술 이전을 위해 미국·영국과 체결했던 '오커스 협정'처럼 미국 원자력법 91조에 근거한 군사 목적 이용을 위한 별도 협정 체결 방안을 한국 정부가 검토해야 함을 시사한다. 게다가 모든 협정은 최종적으로 미 의회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행정부 내의 이견 조율을 넘어 광범위한 정치적 합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다만, 핵추진 잠수함 건조 위치에 대해서는 양국 정상 간 논의에서 한국 내 건조를 전제로 진행됐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위 실장은 "협조를 요청한 것은 핵연료에 관한 부분이라 건조 위치는 일단 정리가 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이번 공동 설명자료에는 동맹 현대화의 일환으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위한 협력 지속, 국내총생산(GDP)의 3.5%로 국방비 증액, 2030년까지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 주한미군을 위한 330억 달러 포괄적 지원 등 광범위한 안보 및 경제적 협력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번 합의가 한국의 국방력 강화에 대한 미국의 정책적 지지를 확인한 성과임은 분명하나, 후속 협상의 과정에서 한국의 국익을 최대화하고 실질적인 결실을 맺기 위한 정부의 정교한 외교력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