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과 왕릉이 단순한 역사 관광지를 넘어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핵심 관광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1일 국민주권정부 출범 이후 1년간의 정책 성과를 발표하고, 국가유산 관광 활성화와 규제 혁신, K-헤리티지 세계화를 주요 성과로 제시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해 궁·능 관람객은 1781만4848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12.8% 늘어난 수치다. 궁·능은 4대궁과 종묘, 조선왕릉을 포함한 국가유산 관람 기반으로, 2023년 1437만명, 2024년 1578만명에 이어 3년 연속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단발성 회복을 넘어 국가유산 관광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흐름이 확인된 셈이다.
외국인 관람객 증가세도 뚜렷했다. 지난해 궁·능 외국인 관람객은 426만9278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관람객의 약 24%에 해당하는 규모다. 코로나19 이후 회복이 본격화된 2022년과 비교하면 약 7배 늘어난 수치다. 고궁과 왕릉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이자 독립적인 관광 목적지로 기능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들어서도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궁·능 방문객은 545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늘었다. 이 가운데 외국인은 141만명으로 28% 증가했다. BTS 광화문 공연 등 단기 수요를 끌어올린 요인도 있었지만, 국가유산청은 궁중문화축전과 창덕궁 달빛기행 등 고궁의 역사성과 체험성을 결합한 프로그램이 관람객 확대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 관광은 수도권 궁궐 관람에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로도 확장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야행, 세계유산축전, 미디어아트 등 지역 국가유산 활용 프로그램을 확대해 지난해 671만명의 방문객을 유치했고, 약 7200억원의 경제 파급 효과를 낸 것으로 추산했다. 방문객 1인당 약 10만7000원의 소비 유발 효과가 발생한 셈이다. 숙박, 식음료, 교통, 지역 상권 소비가 함께 움직이면서 국가유산 관광의 경제 효과가 입장 수익을 넘어 지역 소비 생태계로 번지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수도권에 집중된 외국인 관광객을 지방으로 분산하기 위해 "국가유산 방문 브릿지"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지역의 국가유산을 야간관광, 축제, 미디어아트와 결합해 체류형 관광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지방 소도시의 문화자산을 관광 상품으로 재구성하면 인구 감소와 상권 침체를 겪는 지역에도 새로운 방문 수요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국제행사도 국가유산 정책의 주요 축으로 제시됐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린다. 부산시 공식 안내에 따르면 행사는 7월 13일부터 29일까지 17일간 진행된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 등재와 보존, 보호에 관한 사항을 논의·의결하는 유네스코의 핵심 회의다. 한국이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뒤 38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규제 혁신도 성과 항목에 포함됐다. 국가유산청은 국가유산 규제지역 내 건축행위 등 행정 절차 소요 건수가 최근 3년 평균보다 26% 줄었고, 올해 1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한 389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영향진단제도 도입으로 도시계획 수립 단계에서 국가유산 영향을 미리 검토하고, 매장유산 보존 방안과 경관 영향 검토 절차를 함께 진행하도록 개선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국외 소재 문화유산 환수와 국제 협력 성과도 공개됐다. 지난해 일본에서 조선왕실 관련 건축물인 "관월당"이 100년 만에 반환됐고, 올해 2월에는 미국에서 "척암선생문집" 등 책판 3점이 기증됐다. 이집트 라메세움 신전 탑문 복원 과정에서는 람세스 2세의 상형문자를 확인하는 학술 성과도 있었다. 국가유산청은 보존·복원 기술과 국제 협력을 K-헤리티지 세계화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지난 1년은 국가유산 관광 활성화와 과감한 규제 혁신을 통해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창출한 시기"라며 "문화강국의 뿌리이자 K-컬처의 원천인 국가유산이 국가 브랜드 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유산 관광이 성장세를 이어가려면 관람객 수 증가를 관리할 수 있는 현장 운영 체계도 함께 보완돼야 한다. 외국인 관람객 증가와 지역 축제 확대는 경제 효과를 키우는 동시에 혼잡 관리, 해설 품질, 문화유산 보존 부담을 높일 수 있다. 궁·능 관람객 1781만명 시대에 들어선 국가유산 정책은 더 많은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단계를 넘어, 보존과 활용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가 다음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