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을 이겨내고 다시 교단에 섰던 제주 지역의 50대 교사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남겼다. 26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양성우 씨가 심장과 폐, 간, 양쪽 신장을 기증해 5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 6일 제주한라병원에서 양성우 씨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과 폐, 간, 양쪽 신장을 기증했다고 20일 밝혔다. 피부도 인체조직으로 기증해 질병과 사고로 조직 손상을 입은 환자들의 회복을 도울 수 있게 됐다.
양 씨는 지난달 31일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의료진으로부터 회복하기 어렵다는 설명을 들은 뒤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떠올린 것은 평소 양 씨의 삶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어려움에 놓인 학생들을 지나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본인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내 강산주 씨는 "남편은 의식이 있었다면 장기 기증을 선택했을 사람"이라며 "떠나기 전 누군가에게 생명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씨의 교직 생활은 2000년 시작됐다. 제주에서 2남 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그는 서귀포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26년 동안 교육 현장을 지켰다.
학교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먼저 살피는 교사였다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기억했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챙겼고, 집을 나간 학생이 생겼을 때는 직접 찾아 나서기도 했다.
교직 생활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24년이었다. 공모를 거쳐 교장으로 근무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은 점차 회복됐지만 교장직에서는 물러나야 했다.
양 씨는 학교를 떠나는 대신 다시 아이들 앞에 서는 길을 택했다. 재활치료를 이어간 끝에 지난해 9월 평교사로 복귀했다. 교장에서 평교사로 직책은 달라졌지만 다시 수업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중요했다.
복귀 이후에도 치료는 계속됐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업을 진행했고 퇴근하면 치료를 받은 뒤 다음 날 학교에 나갔다. 건강 때문에 한 차례 교단을 떠났던 사람이 다시 교실로 돌아와 학생들을 만나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올해 4월 말 다시 뇌경색 초기 진단을 받았다. 양 씨는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며 근무하다 6월 다시 병가를 냈다. 이때도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접지 않았다. 치료와 운동을 계속하며 다시 교단에 설 날을 준비했다.
지난달 31일 상황이 급변했다. 재활을 이어가던 양 씨가 쓰러졌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가족들의 바람에도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길에는 그가 26년 동안 맺은 인연들이 모였다. 발인 날 제자와 동료 교사, 학부모 등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 고인을 배웅했다. 학교에서 시작된 인연을 오랫동안 이어왔던 그의 삶이 마지막 자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아내 강 씨는 남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사랑해 주고 예뻐해 줘서 고마워. 오빠를 만나 정말 행복했어"라며 "이제는 아픔 없는 곳에서 좋아하는 축구도 하고, 마음껏 여행하며 웃으면서 지내"라고 말했다.
두 아들을 향한 남편의 마음도 대신 전했다. 강 씨는 "두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우리 두 아들도 자랑스럽고 다정한 아빠를 많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어"라고 했다.
뇌출혈로 교장직을 내려놓고도 양 씨가 선택한 곳은 다시 교실이었다. 두 번째로 병가를 낸 뒤에도 복귀를 준비했다. 끝내 교단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그의 심장과 폐, 간, 두 개의 신장은 이제 다섯 사람의 몸에서 삶을 이어가게 됐다. 26년 동안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를 고민했던 교사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삶으로 또 하나의 가르침을 남겼다.
박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