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거부한 조희대 대법원장이 향후 국정감사 등을 통해 관련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대법관 후보자 제청 절차를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의 충돌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재점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조 대법원장은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면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제청을 유지할 것인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궁금한 내용은 앞으로 공보관을 통해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여러분들이 궁금한 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 국정감사 등을 통해 필요한 내용을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추가 입장 표명은 피하면서도, 국회에서 관련 경위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앞서 조 대법원장은 지난 22일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보낸 재제청 요청 문서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명시돼 있지 않아 이를 받아들일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조 대법원장은 다음 날에도 제청 과정에 절차적 흠결이 있었다는 청와대 주장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비춰 수긍하기 어렵다”고 재차 반박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달 18일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와의 실질적인 협의 없이 손 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자로 제청하면서 시작됐다. 청와대는 열흘 뒤 손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대법원장에게 후보자를 다시 제청해달라고 요구했다.
청와대는 대통령과 대법원장 사이에 통상적으로 이뤄져 온 협의가 충분하지 않았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들의 의견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기 위한 권한이 아니라 대통령의 임명권이 적절하게 행사되도록 뒷받침하는 절차라는 입장이다.
반면 대법원은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권한이 대법원장에게 있고, 청와대가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헌법에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이미 제청된 후보자를 대통령이 거부하거나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구하는 절차와 요건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양측이 문서의 의미와 제청권의 범위를 놓고 맞서면서 대법관 공백 사태가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이 손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조 대법원장 역시 재제청을 거부할 경우 후임 대법관 임명 절차는 사실상 멈추게 된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지 않다가 회의장을 떠난 전례가 있다. 당시에는 기관장 인사말만 읽은 뒤 증인선서를 하지 않았고, 민주당 의원들의 질의에 응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이 대법관 후보자 제청 과정과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 대법원장의 거부 사유를 집중적으로 따질 가능성이 크다. 대법관 제청권과 대통령 임명권의 관계를 둘러싼 헌법 해석이 국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충돌할지 주목된다.
백설화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