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사실을 숨긴 채 상대방과 피임 기구 없이 성관계를 맺은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며 경종을 울렸다. 이번 판결은 실제 바이러스 전파 여부와 관계없이 감염 위험성이 있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묵비한 행위 자체가 상대방의 신체적 안전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중대 범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법적 함의가 크다.
광주지방법원은 최근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를 종합하면 A씨는 본인이 HIV 확진 판정을 받아 관리 대상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제 중이던 여성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채 콘돔 등 감염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고 수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통해 피고인이 감염병 전파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특히 피해자가 사건 인지 후 느꼈을 극심한 심리적 공포와 불안, 그리고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반복적인 정밀 검사를 받아야 했던 정신적 고통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피해 여성은 현재까지 진행된 모든 검사에서 최종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잠복기 등을 고려해야 하는 질병의 특성상 일상생활에서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A씨가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나 사과 노력을 게을리한 점도 중형 선고의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성관계 시 감염병 유무를 알리는 것은 상대방이 성적 행위에 동의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정보라며, 이를 은폐한 것은 상대방의 알 권리를 박탈하고 신체적 자율성을 유린한 행위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