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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쓰봉 대란, 우리가 외면해온 시간의 대가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 | 입력 26-04-06 14:10


마트 계산대 앞, 한 장의 봉투를 두고 사람들이 망설인다.

누군가는 다시 장바구니를 찾고, 누군가는 
손에 물건을 나눠 들며 불편을 감수한다.
“1인 1매.”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긴 
시간이 압축돼 있다.
이른바 ‘쓰봉 대란’.

사람들은 그것을 일시적인 수급 문제로 이해하려 한다.

전쟁 때문이라 하고, 원자재 가격 때문이라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유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편리함’을 선택해왔다.
가볍고, 싸고, 쉽게 버릴 수 있는 것들.
그 선택은 반복됐고, 반복은 습관이 되었으며,

습관은 결국 구조가 됐다.
플라스틱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만들고,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며,
너무 쉽게 버리는 사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의 끝에서,
우리는 이제야 묻는다.
“왜 봉투가 부족한가.”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계기는 분명하다.
국제 정세의 불안, 에너지 시장의 흔들림,
그리고 그 여파로 이어진 원료 수급의 불안정.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언제나 충분했고, 언제나 공급됐으며,
언제나 문제없이 돌아갈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이 깨진 순간,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부족’이 아니라
‘의존’이었다.

정책은 늘 빠르게 반응한다.
봉투 사용을 줄이고, 규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참여를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이 정책들은 과연
문제의 본질을 향하고 있는가.
우리는 봉투를 줄이려 애쓰지만,
봉투를 만들어내는 구조는 그대로 두고 있다.

우리는 소비를 줄이자 말하지만,
소비를 부추기는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한다.
이 간극 속에서

정책은 점점 ‘상징’이 되고,
현실은 점점 ‘불신’으로 채워진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불편해도 감수해야 한다”고.
그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
불편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나눠야 할 것은
불편이 아니라
책임이다.

우리는 지금, 아주 조용하지만 분명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하나의 봉투에 의존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
우리는 이 구조를 바꿀 의지가 있는가.
탈플라스틱은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방향의 문제다.
생산을 줄이고,
소비를 재설계하며,

편리함보다 지속가능성을 선택하는 일.
그것은 불편을 감수하는 차원을 넘어
삶의 방식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쓰봉 대란’은
단지 봉투가 부족해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오래
문제를 미뤄왔는지,
얼마나 깊이 의존해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균형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작은 불편은

늦게 도착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경고는 늘 그렇듯,
두 가지 길을 남긴다.
외면하거나,
바꾸거나.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편리함에 익숙한 사회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불편을 넘어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봉투 한 장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문제는 봉투가 아니었다는 것을.
문제는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었다는 것을.

지금 필요한 것은
조금 덜 쓰는 삶이 아니라,
다르게 쓰는 사회다.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해야 한다.

작은 변화가 아니라
방향의 전환.
그것이 없다면
이 대란은 끝나지 않는다.
이름만 바꾼 채,
다시 돌아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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