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1분기 저소득층 가계의 적자 폭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수준으로 벌어졌다. 소득 하위 20% 가구는 월평균 44만원 가까운 적자를 냈고, 소득 상위 20% 가구는 344만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물가와 이자 부담, 필수 지출 증가가 겹치면서 계층 간 가계 여력 차이가 다시 커졌다.
31일 국가통계포털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득 1분위 가구의 실질 흑자액은 마이너스 43만8174원으로 집계됐다. 흑자액은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금액이다. 이 수치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가구가 벌어들여 실제 쓸 수 있는 소득만으로 월평균 소비를 감당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통계청은 2026년 1분기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이 310만5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했다고 밝혔다.
1분위 가구의 적자 규모는 201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모든 분기를 통틀어 가장 컸다. 코로나19 확산기였던 2020년 1분기와 고물가 부담이 컸던 2023년 1분기보다도 적자 폭이 확대됐다. 저소득층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에 가까웠지만 식료품, 보건, 교통 등 생활에 필요한 지출은 늘어나면서 가계수지가 악화됐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실질 흑자액은 344만5447원으로 집계됐다. 1분기 기준으로는 최근 4년 사이 가장 많은 수준이다. 1분위와 5분위의 흑자액 격차는 388만3621원으로 벌어졌다. 같은 물가와 금리 환경에서도 소득 계층별로 남는 돈의 차이가 크게 갈린 셈이다.
저소득층의 부담은 소득과 지출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데서 비롯됐다. 1분위 가구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79만2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1% 줄었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 일부 늘었지만, 전체 소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전소득이 감소한 영향이 컸다. 여기에 사회보험료와 이자비용 등 비소비지출이 늘면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돈은 더 줄었다.
소비지출은 오히려 증가했다. 1분위 가구의 실질 소비지출은 123만1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1% 늘었다. 식료품과 보건 지출이 늘었고, 교통·운송과 오락·문화 지출도 증가했다. 저소득층은 필수 지출 비중이 높아 물가가 오르면 소비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소득이 줄거나 정체된 상태에서 지출이 늘면 적자는 곧바로 커질 수밖에 없다.
상위층은 다른 흐름을 보였다. 5분위 가구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814만6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했다. 근로소득 증가율은 제한적이었고 사업소득은 줄었지만, 이자와 배당 등 자산 관련 소득이 늘면서 전체 소득 증가를 이끌었다. 비소비지출은 줄었고 소비지출은 늘었지만, 소득 증가 폭이 이를 감당하면서 흑자액은 크게 남았다.
이번 통계는 고물가와 고금리 부담이 모든 계층에 같은 강도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저소득층은 이전소득 감소와 필수 지출 증가에 취약하고, 고소득층은 자산소득과 금융소득 증가로 소비 확대 이후에도 여유 자금을 남길 수 있다. 특히 이자·배당소득 증가가 상위층 흑자 확대에 영향을 미치면서 자산 보유 여부가 가계수지 격차를 키우는 구조가 드러났다.
문제는 저소득층 적자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먹거리와 의료, 교통비처럼 줄이기 어려운 지출이 계속 오르면 적자 가구는 저축을 줄이거나 빚을 내야 한다. 이자비용까지 늘면 다음 분기의 처분가능소득도 다시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올해 1분기 가계동향은 경기 회복 흐름과 별개로 취약계층의 체감 생활이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위층은 자산소득 증가와 소비 여력 확대로 흑자를 키웠고, 하위층은 소득 정체와 지출 증가 속에 적자 폭을 넓혔다. 앞으로 물가와 금리, 이전소득 흐름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계층 간 가계 여력 격차는 다시 확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