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이 임박한 환자에게만 허용되는 연명의료 유보·중단 결정을 말기 환자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공식 논의 테이블에 오른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와 결정 범위 확대에 따른 오남용 우려를 함께 검토해 올해 안에 제도 개선 권고안을 마련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7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제1차 정기회의를 열고 ‘연명의료결정제도 개선 특별전문위원회’와 ‘AI 및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특별전문위원회’ 운영계획을 심의했다.
연명의료결정제도 개선 특별전문위원회는 의료계·윤리계·환자단체·법조계·종교계·언론계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된다. 2018년 제도 시행 이후 의료현장에서 제기된 문제를 점검하고, 법과 실제 운영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개선안을 마련한다.
핵심 쟁점은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시기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급속히 악화돼 사망이 임박한 ‘임종 과정’에 있다고 판단된 경우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말한다. 연명의료 유보·중단은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고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임종 과정 여부를 판단하는 등의 법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별전문위는 결정 가능 시기를 현재의 ‘임종기’에서 이보다 앞선 ‘말기’로 넓히는 방안을 포함해 주요 과제를 검토한다. 말기 단계부터 환자가 자신의 치료 방향을 미리 결정할 수 있게 해 자기결정권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다만 이번 회의에서 연명의료 중단 시기 확대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적용 시점을 앞당길 경우 환자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와 의학적 판단 기준, 가족과 의료진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지가 함께 다뤄져야 한다. 무연고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 절차와 연명의료계획서 활성화 방안도 앞선 논의 과정에서 개선 과제로 제시됐다.
인공지능과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에 따른 생명윤리 문제를 다루는 별도의 특별전문위원회도 가동한다. 시민단체와 보건의료계, 산업계, 법조계, 윤리계, 연구계, 정부 관계자 등 다학제 전문가 13명이 참여한다.
AI 기술 고도화와 보건의료 빅데이터 수요 증가에 맞춰 연구와 산업 활용을 지원하면서도 환자 등 정보주체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다. 개인정보를 직접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한 가명정보의 활용 범위와 데이터 이용 동의 절차, 연구에 대한 위원회 심의 절차, 데이터 관리체계 등이 주요 검토 대상이다.
위원회 산하에는 생명윤리·안전정책, 배아, 인체유래물, 유전자, 연구대상자보호 등 5개 분야별 전문위원회도 구성된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생명윤리와 안전에 관한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대통령 소속 기구다.
제7기 위원회는 김옥주 서울대 의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민간위원 13명과 정부위원 6명 등 19명으로 구성됐다. 김 위원장은 “현행 연명의료결정제도에서 환자·가족·의료진이 실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보호하면서 데이터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연명의료 특별전문위는 논의를 거쳐 연내 권고안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제시할 예정이다. 이후 실제 제도 변경으로 이어지려면 권고 내용에 따라 관련 법령과 의료현장 지침을 정비해야 하는 만큼, 환자의 선택권을 넓히면서 취약한 환자를 보호할 구체적인 안전장치를 어떻게 설계할지가 논의의 핵심으로 남는다.
박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