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인 언론 보도를 심의하기 위해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민원을 넣게 했다는 이른바 '민원 사주'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온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대해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경찰은 사주를 받은 민원이라도 민원인이 그 내용에 동조했다면 진정한 민원으로 볼 수 있어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결론을 내려, 향후 거센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 6월 21일, 직권남용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된 류 전 위원장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류 전 위원장은 MBC의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인용 보도 등에 대해 가족과 지인 등 사적 이해관계자를 동원해 다수의 민원을 신청하게 하고, 이를 근거로 해당 방송사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심의를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경찰은 불송치 결정의 핵심 이유로 '민원의 진정성'을 문제 삼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결정문에서 "방심위가 내부 직원의 민원 제기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면서, 설령 "사주된 민원이라 하더라도 민원인이 류희림의 의견에 동조해 민원을 냈다면 이를 진정한 민원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사주 의혹이 있는 민원 외에 다른 '진정한' 민원도 있었던 이상, 사주와 심의 결과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경찰의 판단을 두고 즉각 비판이 터져 나왔다. 언론노동조합 방심위지부는 "경찰이 민원 사주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 셈"이라며 "사실관계에 대한 규명 노력 없이 결론부터 내린 '법원 행세하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준희 지부장은 "이번 결정은 앞으로 방심위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심의를 위해 민원을 사주해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최악의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경찰 수사는 류 전 위원장의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없이 참고인 진술과 임의제출 받은 자료에만 의존해 이뤄졌다. 이 때문에 민원의 동기나 경위 등 '사주'의 실체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부실 수사', '면죄부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민원 사주' 의혹은 지난해 공익신고자의 제보로 처음 불거졌으며, 이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고발로 이어졌다. 수사 과정에서 방심위 간부가 "류 전 위원장에게 동생의 민원 사실을 보고했다"는 '양심선언'을 하며 파문이 일기도 했다. 류 전 위원장은 의혹이 제기된 이후 줄곧 혐의를 부인해왔으며, 지난 4월 건강상의 이유로 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경찰의 이번 불송치 결정에 대해 고발인 측인 참여연대와 언론노조 등은 이의신청을 통해 상급 수사기관의 판단을 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민원 사주' 의혹을 둘러싼 논란은 검찰 단계에서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