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행정망을 마비시킨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데이터'라는 핵심 자산을 보호해야 하는 동시에, 한번 불붙으면 꺼지지 않는 '리튬 이온 배터리'를 상대해야 하는 이중고 속에서 힘겨운 진압 작전이 이어졌다. 소방당국은 서버 훼손을 우려해 대규모 주수를 하지 못하고 이산화탄소 소화기 등으로 불길과 사투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한때 잠잠해졌던 불씨가 되살아나기도 해 완전 진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화재는 어젯밤 8시 20분경, 건물 5층 전산실의 무정전전원장치(UPS)에 연결된 리튬 이온 배터리가 폭발하며 시작됐다. 당시 현장에서는 배터리 교체 작업을 위해 전원을 차단하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불로 외주업체 소속 40대 작업자 1명이 얼굴과 팔에 1도 화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건물 내에 있던 직원 100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소방당국은 인력 200여 명과 장비 60여 대를 동원해 밤샘 진화에 나섰으나, 진압은 더디게 진행됐다. 전산실 내부 온도가 160도까지 치솟았지만, 데이터를 보관 중인 서버에 물이 닿을 경우 국가적 자산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대량의 물을 뿌리는 일반적인 화재 진압 방식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기선 대전 유성소방서장은 "국가 중요 정보가 있어 서버 보호를 위해 다량의 물을 주수할 수 없었다"며 "열 폭주를 지연시키는 작전으로 소량의 물을 지속적으로 뿌리며 진화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제한적인 진압 작전으로 인해 10시간이 지난 오늘 아침 6시 반이 되어서야 큰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리튬 이온 배터리 화재의 고질적인 문제인 '재발화' 현상이 발목을 잡았다. 초진 2시간여 만에 꺼졌던 배터리에서 다시 불길이 치솟았고, 소방대원들이 10분 만에 긴급히 진압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까지 배터리팩 384개가 불에 탄 것으로 집계됐으며, 소방대원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화재로 정부24를 포함한 647개의 정부 업무 시스템이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으며, 경찰과 소방 당국은 완전 진화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