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의료기사법)” 개정안이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의 해묵은 쟁점인 직역 간 갈등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해당 개정안의 핵심은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등 의료기사의 업무 수행 근거를 현행 "의사의 포괄적 지도"라는 수직적이고 종속적인 개념에서 "의사의 처방 또는 의뢰"라는 수평적, 기능적 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변화는 단순한 문구 수정이 아닌, 의료기관 내외부에서 의료기사 직역의 독립성을 확대하고 나아가 지역사회 의료 및 돌봄 체계의 근본적인 재편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의료계 전체에 막대한 파급 효과를 낳을 전망이다.
현행 '의료법' 및 '의료기사법'의 체계는 의료기사를 의사의 진단 및 처방을 보조하는 '기능적 인력'으로 명확히 규정하며, 그들의 모든 업무는 예외 없이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의 포괄적 지도·감독' 하에 이루어져야만 법적 정당성을 획득한다. 이는 의사가 환자 진료의 최종 책임자로서, 의료 행위 전반에 대한 법적, 윤리적 책임을 지는 구조에 기인한다. 따라서 아무리 숙련된 물리치료사라 할지라도 병원 문 밖을 나서는 순간 방문 재활이나 가정에서의 검체 채취 등은 법적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이 법률적 경계와 현실 사이의 심각한 괴리를 초래했다. 세계 유례없는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만성질환자의 재택 관리 및 퇴원 후 지역사회 연계 치료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재활이 필요한 환자가 매번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절박한 가정방문 재활 서비스 수요는 현행 법률의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의료기사 직역은 이러한 사회적 수요를 해소하고 환자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의사의 처방전 발행을 전제로 한 '원외' 업무 수행을 주장하며 개정의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하고 있다.

실제 선진국에서는 이미 의료기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인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추세가 보편화되어 있다. 특히 물리치료 분야를 예시로 들면, 미국을 비롯한 많은 주에서는 이미 "Direct Access(직접 접근)"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환자가 의사의 처방전이나 의뢰 없이도 개원한 물리치료소를 직접 방문하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자율권을 물리치료사에게 부여하는 방식이다.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1957년 처음 시행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세계물리치료사연맹(WCPT)에 가입된 84개 정회원국 중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한 다수의 국가에서 물리치료사의 영업권(개업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물리치료사를 1차 의료인으로 인정하며, 의사의 포괄적 지도라는 종속적 위치에서 벗어나 독립적 의료 주체로서 환자를 평가하고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외 사례는 환자의 초기 접근성을 높이고 치료 과정의 효율성을 증대시킨다는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며, 한국 의료기사 직역이 개정안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 지점을 명확히 제시한다.
이러한 명분론의 이면에는 직역 간 업무 범위와 의료비 통제 체계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의료기관 입장에서 각종 검사와 치료 행위는 주요 수익원이 된다. 한국의 의료 체계가 진료나 상담보다는 직접적인 행위에 상대적으로 높은 가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만약 현행처럼 의료기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검사 및 치료 행위가 의사의 처방을 기반으로 하는 '원외' 독립 센터로 분리된다면, 병원급 의료기관의 수익성은 필연적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건강보험 재정 관리의 핵심 통제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광범위한 '진료비 삭감' 제도를 통해 의료 행위의 무분별한 증가를 억제하고 있다. 이 체계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시행한 모든 검사나 치료 비용이 심평원의 엄격한 사후 심사를 거치며, '과잉 진료'나 '불필요한 처치'로 판단될 경우 그 비용은 의사에게 지급되지 않는다. 즉, 의사가 재정적 위험을 개인적으로 감수하는 구조를 통해 의료 이용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어 '원외 처방'이 현실화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의사는 물리치료와 같은 행위를 직접 시행하고 비용을 청구하는 주체에서 '처방전'을 발행하는 역할로 한정된다. 환자는 처방전을 들고 독립된 원외 물리치료센터를 방문하고, 서비스 비용 청구는 해당 센터가 심평원에 직접 하게 된다.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의사'와, 서비스 제공 및 비용 청구를 하는 '원외 센터'가 명확히 분리되는 것이다. 이 경우 의사는 삭감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처방에 대한 재정적 책임 부담이 크게 완화된다. 환자 요구에 따르거나 관행적으로 처방전이 남발될 위험성이 증대되지만, 그 재정적 책임은 원외 센터와 건강보험 재정이 나눠 지게 된다. 핵심적인 통제 지점이었던 '의사'의 행태를 심평원이 실질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면서, 불필요한 의료 이용이 급증하고 건강보험 재정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개연성이 극도로 높아진다는 것이 반대 측의 논리다. 환자 편의 증진이라는 당위성 뒤에 숨겨진,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더 큰 비용 청구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의료기사법 개정안 논의는 의료비 통제와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으로 의료 전달 체계를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현재 한국 사회 앞에는 두 가지 상이한 선택지가 놓여 있다. 첫째는 현행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의사를 최종 책임자로 설정하여 의료 행위 전반을 강력하게 통제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의료기사에게 '독립 개원'의 길을 터줄 수 있는 개정안은 원칙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둘째는 직역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선진국형 모델로의 전환이다. 의사는 진단과 처방에 집중하고, 의료기사를 포함한 여러 직역이 독립적인 센터나 치료소를 열어 개별적으로 건강보험에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환자 접근성과 서비스의 다양성은 향상되겠으나, 현재와 같은 강력한 비용 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해지며 국민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결정은 향후 수십 년간 지속될 의료 서비스의 질, 접근성, 그리고 사회 전체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