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로이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규정했다.
그가 외친 계몽의 표어, *“Sapere Aude(스스로 생각할 용기를 가져라)”*는 300년이 지난 오늘, 오히려 더 절박하게 들린다.
정보는 넘치지만 판단은 빈곤하고, 목소리는 크지만 책임은 가벼운 시대다. 이성이 잠든 자리에 선동과 확증편향이 둥지를 틀었다.
칸트 철학의 핵심은 단순하다. 인간은 목적 그 자체라는 선언이다.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는 그의 ‘정언명령’은 도덕을 취향이나 유불리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 의무의 문제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떤가. 관계는 거래가 되고, 신념은 진영의 무기가 되었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소모시키는 언어가 난무한다. 타인을 수단화하는 순간, 공동체의 기반은 무너진다.
현대인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은 이성의 용기다. 생각은 귀찮고, 판단은 피곤하다. 그러나 남이 정해준 답에 기대는 순간 자유는 축소된다. 칸트가 말한 자율은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이성에 스스로 복종하는 태도’다.
자유는 방종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는 절제에서 비롯된다.
두 번째는 보편성의 감각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행위가 모두에게 적용되어도 괜찮은가. 이것이 칸트의 질문이다.
온라인에서의 무책임한 폭로,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이중잣대, 편리할 때만 강조되는 정의. 만약 그것이 보편적 규칙이 된다면 사회는 유지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충동을 멈추고 원칙을 선택하게 된다.
세 번째는 책임의 윤리다. 권리는 외치면서 의무를 말하지 않는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 칸트는 도덕을 결과가 아닌 동기의 문제로 보았다. 옳기 때문에 행하는가, 아니면 유리하기 때문에 선택하는가.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묻지 않는 풍조가 만연한 시대에, 그는 동기의 순수성을 묻는다. 불편하지만 필요한 질문이다.
지금 우리는 기술의 속도에 취해 있다. 인공지능은 판단을 대신하고, 알고리즘은 취향을 설계한다. 그러나 판단을 위임할수록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무거워진다.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단단한 기준이다.
칸트는 완벽한 사회를 약속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이 인간답게 설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제시했을 뿐이다. 이성이 깨어 있고, 타인을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하며, 스스로 세운 원칙에 책임을 지는 태도. 거창하지 않지만,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가치다.
이성이 잠든 시대다. 그렇기에 더더욱 물어야 한다. 우리는 편의의 시민인가, 아니면 원칙의 시민인가.
칸트는 대답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 생각할 용기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