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수사 외압 논란이 결국 전·현직 군·정부 고위 인사 12명의 기소로 이어졌다. 사건 발생 이후 여러 차례 정치적 공방이 반복돼 온 가운데, 특별검사팀은 당시 초기 조사 결과가 외부 압력으로 수정됐다고 판단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을 포함한 핵심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초동 조사 기록의 변경 과정이 군 지휘체계 내부에서 어떻게 실행됐는지가 이번 기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명현 특별검사는 21일 윤 전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등 총 12명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법무·정책·기획 분야 전·현직 간부, 해병대 지휘부 관계자들도 함께 기소되면서 이 사건이 군 내부 보고 체계 전반을 아우르는 조직적 개입으로 발전했다는 특검의 판단이 드러났다.
특검에 따르면 사건의 출발점은 2023년 7월 경북 예천 수해 현장에서 임무 수행 중 채모 상병이 순직한 뒤 실시된 해병대의 초동 조사였다. 당시 조사단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로 적시했으나, 이 결과가 대통령실에 보고된 뒤 상황이 급속히 바뀌었다는 것이 특검의 설명이다. 보고를 받은 윤 전 대통령이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느냐”라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이종섭 전 장관에게 전화로 수사 방침을 변경하라는 취지의 질책성 발언을 했다는 진술이 확보됐다고 밝혔다.
특검 조사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군 사고가 날 때마다 지휘관까지 줄줄이 처벌하면 군 지휘 체계가 유지되겠느냐”, “이미 여러 차례 말했지 않느냐”라고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발언 직후 이 전 장관은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에게 수차례 연락해 초동 수사기록을 경찰에 제출하지 말 것을 지시했고, 예정돼 있던 언론·국회 브리핑도 취소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은 이어진 군 내부 회의에서 임 전 사단장을 혐의에서 제외하고 보고서를 재작성하도록 지시한 정황도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지시가 국방부와 해병대 지휘부 전반에 전달되면서 수사 방향이 사실상 변경됐다고 판단했다. 이번 기소 대상에 국방부 법무관리관실, 기획관리관실, 군사보좌관 등 다양한 조직이 포함된 것은 이러한 구조적 개입을 뒷받침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군 수사체계의 독립성 문제는 이번 사건이 법정으로 넘어가면서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초동 조사 결과가 외압으로 바뀌었다는 의혹은 군 조직의 전문성과 공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향후 재판에서 사실관계가 어떻게 확정되느냐에 따라 조직 운영 기준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전문가들 역시 지휘권과 수사권의 경계가 불명확할 경우 군 내부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이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지시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군 지휘부가 실제로 어떤 절차를 통해 초동 조사 결과를 변경했는지에 대한 기록과 증언의 신빙성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초동 조사 단계에서 작성된 문서, 보고 체계, 통화 내역 등이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지 역시 향후 증거 판단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특검은 추가 자료 분석을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보완 수사나 추가 기소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이번 기소가 군·국방부 내부 수사 기준과 권력기관의 개입 논란을 어디까지 규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