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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메달 약속 지켰다" 4수 끝에 시상대 오른 김상겸의 눈물

정기용 기자 | 입력 26-02-09 17:59



스노보드 국가대표 김상겸(하이원)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겼다. 김상겸은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2014년 소치 대회부터 이어진 네 번째 도전 만에 일궈낸 성과다.

김상겸은 경기 직후 아내와 영상 통화를 하며 감정을 쏟아냈다. 김상겸의 아내는 9일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통화 화면을 공개하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화면 속 김상겸은 메달 획득의 기쁨과 그간의 중압감을 털어내듯 아내를 마주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메달을 따서 좋은 기억을 선물하고 싶다던 남편의 약속이 마음을 울렸다는 심경을 덧붙였다.
이번 은메달은 김상겸 개인의 영예를 넘어 한국 올림픽 역사에도 기록됐다. 김상겸은 한국 동·하계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다. 앞선 세 차례 올림픽에서 10위권 밖의 성적에 머물렀던 김상겸은 서른 중반의 나이에 당초 예상을 뒤엎고 시상대에 올랐다.

김상겸의 올림픽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4 소치 17위, 2018 평창 15위, 2022 베이징 24위 등 메달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내는 결혼을 결심했던 평창 대회 당시 16강 탈락 후 함께 울었던 기억과 베이징 대회에서 메달을 걸어주지 못해 괴로워하던 남편의 모습을 회상했다. 평소 지킬 수 있는 말만 하는 성격인 김상겸이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아내에게 메달을 약속했다는 설명이다.
현장 취재 결과 김상겸은 시상식 이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메달을 목에 건 채 연신 눈시울을 붉히던 그는 경기장 주변을 메운 관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설상 종목 특유의 거친 환경 속에서도 김상겸은 마지막 레이스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은 상대 선수와 동시에 출발해 속도를 겨루는 종목으로 찰나의 실수가 승패를 가른다. 김상겸은 이번 대회에서 노련한 경기 운영을 바탕으로 유럽의 강호들을 차례로 따돌렸다. 특히 체력적 부담이 큰 토너먼트 과정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은 것이 은메달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체육회와 동계 종목 관계자들은 이번 메달이 한국 설상 종목에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다. 빙상에 편중된 동계 스포츠 저변에서 스노보드 메달은 훈련 환경 개선과 지원 확대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김상겸이 물꼬를 튼 메달 사냥이 대회 초반 한국 선수단의 전체 분위기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다.

다만 비인기 종목 선수가 겪는 고질적인 지원 부족과 세대교체 문제는 여전한 과제로 남았다. 김상겸의 12년 집념이 은메달로 결실을 맺었으나, 그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 육성 체계는 여전히 미진한 상태다. 이번 성과가 일회성 이변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설상 종목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구체적인 육성 방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김상겸이 선수 생활의 정점을 찍은 가운데, 한국 설상 종목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둘러싼 논의는 불가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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