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직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났다. 오는 8월 전당대회 출마를 위한 본격 행보에 들어간 첫날, 친노·친문 상징성을 가진 문 전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접점을 만든 것이다.
정 전 대표는 24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았다. 문 전 대통령이 운영하는 평산책방 부스 앞에서 두 사람은 짧게 인사를 나눴고, 문 전 대통령은 정 전 대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하여튼 고생했다"고 말했다.
이 만남은 정 전 대표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표직 사퇴를 발표한 지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 정 전 대표는 8월 17일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를 준비하기 위해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민주당 당헌·당규상 당 대표 선거 출마자는 대표직 등 당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두 사람은 평산책방 부스에 놓인 책을 함께 둘러봤다. 정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김대중 육성 회고록",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 문 전 대통령의 "문재인의 운명", 이재명 대통령의 "결국 국민이 합니다" 등 4권을 구입했다. 책 선택 자체가 민주당의 전직 대통령들과 현 대통령을 하나의 정치적 계보로 묶는 장면이 됐다.
정 전 대표는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 전 대통령과 나눈 대화도 전했다. 그는 "오늘 아침 사퇴의 변에서 김대중의 역사, 노무현의 역사, 문재인의 역사를 자양분 삼아 이재명의 역사를 더 꽃피워야 한다고 했다고 말씀드렸더니, 문 전 대통령이 잘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따뜻하게 손을 잡아줘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정 전 대표는 이날 사퇴 회견에서도 당의 역사와 통합을 강조했다. 그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경쟁이 거칠어지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정통성과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함께 내세우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문 전 대통령을 만난 일정은 그 연장선에 놓인다.
민주당 안에서는 정 전 대표의 연임 도전과 김민석 국무총리의 당 복귀 가능성, 송영길 의원의 출마 가능성이 맞물리며 당권 경쟁 구도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정 전 대표는 강한 개혁 노선과 당원 기반을 앞세워 왔고, 김 총리는 당정 안정과 국정 동력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송 의원은 당정관계와 지방선거 책임론을 고리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정 전 대표의 문 전 대통령 예방은 친명계 내부 경쟁만으로 전당대회를 치르지 않겠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그는 친명계 핵심 인사로 분류되지만, 과거부터 친노·친문 지지층과도 일정한 접점을 유지해 왔다. 전당대회에서 당심과 지지층 확장을 동시에 노리려면 친문 진영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다만 민주당 내부의 신경전은 이미 시작됐다. 보완수사권 폐지와 1인 1표제 확대 등 전당대회 쟁점이 부상하면서 후보군과 지지층 사이의 공방도 커지고 있다. 정 전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을 만난 장면은 통합 메시지로 포장됐지만, 당권 경쟁의 상징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지도부는 이재명 정부 집권 2년 차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고 2028년 총선 공천권을 쥐게 된다. 당권 경쟁은 단순한 인물 대결이 아니라 당정관계, 검찰개혁 속도, 당원 권한 확대, 지방선거 책임론까지 얽힌 싸움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정 전 대표는 대표직 사퇴 직후 문 전 대통령을 만나 민주당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장면을 만들었다. 남은 과제는 그 장면이 실제 통합의 메시지로 작동할지, 아니면 전당대회 표심을 겨냥한 상징 정치로 해석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