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5명이 지난해 의결된 이른바 "윤석열 방어권 보장 권고안"을 폐기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당시 권고가 인권위의 독립성과 신뢰를 훼손했다는 이유지만,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의안을 결재하지 않아 전원위원회 상정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이숙진·오영근 상임위원과 소라미·조숙현·오완호 비상임위원은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 방어권 보장 권고안을 폐기하는 내용의 의안을 인권위 소관 부서에 제출했다.
의안에는 지난해 2월 권고안 의결이 인권위의 독립성과 위상을 훼손하고 기관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위가 해당 안건을 가결한 데 대해 국민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는 요구도 포함됐다.
인권위 의안은 소관 부서 검토와 위원장 결재를 거쳐 전원위원회에 상정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안 위원장이 해당 의안을 결재하지 않아 이날 예정된 전원위원회에서 논의될지는 불투명하다.
인권위원 5명이 제출한 의안이 아직 전원위에 올라가지 않은 만큼 기존 권고안의 폐기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전원위에 상정되더라도 재적 위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논란의 권고안은 지난해 2월 10일 열린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재적 위원 11명 가운데 6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당시 인권위는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형사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증거조사와 적법절차를 준수하고, 수사기관은 불구속 수사 원칙을 고려하라는 내용을 의결했다.
권고안은 김용원 당시 상임위원 등이 발의했다. 의결 과정에서 일부 인권위원은 특정 정치인의 탄핵심판과 형사 절차에 인권위가 개입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와 사법기관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회의장 안팎에서도 충돌이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 지지자와 시민사회단체가 인권위 건물에 모였고, 회의는 약 4시간 동안 진행됐다. 권고안 통과 직후 인권위 직원들은 별도 기자회견을 열어 기관이 특정 권력자의 방어에 동원됐다며 사과했다.
안건 상정 절차가 규정을 어겼다는 내부 증언도 뒤늦게 나왔다. 인권위 직원은 지난해 9월 권고안의 내용에 대한 결재가 끝나기 전에 전원위원회 개최 일정부터 결재선에 올랐다며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안 위원장은 권고 의결 1년 뒤인 지난 2월 전원위원회에서도 결정을 철회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당시 조숙현 위원은 모든 구속 피의자를 위한 일반적 권고가 아니라 윤 전 대통령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비판했고, 찬성했던 일부 위원은 안건과 무관한 발언이라며 항의했다.
권고안을 의결한 안 위원장과 당시 인권위원들은 내란 선전·선동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됐지만 경찰은 지난달 불송치했다. 경찰은 인권위 권고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견 표명에 해당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전원위원 11명 가운데 권고안에 비판적인 위원이 과반을 차지하면서 표결이 이뤄질 경우 폐기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인권위원의 정치적 성향을 객관적으로 구분하는 공식 기준은 없어 단순히 "진보 성향 6명"으로 단정하는 표현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인권위 직원들은 최근 내부 게시판에 안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글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권고안을 의결한 책임자가 계속 위원장직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번 의안은 이미 외부 기관에 전달된 권고를 법적으로 무효화하는 절차라기보다 인권위가 과거 결정을 공식적으로 철회하고 기관의 입장을 다시 밝히는 성격이 강하다. 안 위원장이 의안 상정을 계속 미룰 경우 합의제 기관에서 위원장이 다수 위원의 심의 요구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란도 커질 수 있다.
백설화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