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저조한 2분기 실적표를 받아든 삼성전자가 대규모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라는 강력한 주주환원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삼성전자는 8일 공시를 통해 총 3조 9119억 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의 기대치를 밑도는 실적 발표로 인한 주가 하락 우려를 조기에 차단하고, 책임 경영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긴급 처방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매입하는 자사주 중 2조 8119억 원에 해당하는 물량은 전량 소각될 예정이다. 자사주 소각은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의 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높이는 효과가 있어, 대표적인 주가 부양책으로 꼽힌다. 나머지 1조 1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는 임직원 상여금 지급 등에 활용될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이 단순한 실적 방어를 넘어, 주주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는 회사의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선 배경에는 "어닝 쇼크" 수준의 2분기 실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날 발표된 삼성전자의 2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4조 6000억 원으로, 금융정보업체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컨센서스)인 6조 원대 중반을 크게 밑돌았다. 매출은 74조 원을 기록했다.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핵심 사업인 반도체(DS) 부문의 부진으로 지목된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이 시장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HBM3E 12단 제품 인증 지연으로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재고 부담이 늘었고, 이는 고스란히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의 대규모 적자와 시스템LSI 사업 부진이 겹치며 반도체 부문 전체의 이익이 급감했다.
또한, 2분기 들어 나타난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 현상 역시 수출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의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모바일경험(MX) 부문이 "갤럭시 S25" 시리즈의 견조한 판매에 힘입어 3조 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선방했지만, 반도체 부문의 부진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삼성전자는 실적 발표와 동시에 약 4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계획을 발표하며 흔들리는 투자 심리 다독이기에 나섰다. 단기적인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장기 성장성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주주들과의 신뢰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시장은 삼성전자의 이번 주가 부양책이 단기적인 주가 방어에 성공하고, 하반기 HBM 공급 본격화 및 반도체 업황 개선과 맞물려 주가 반등의 모멘텀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