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 직원이 1년 넘게 30억 원의 회사 자금을 제멋대로 빼돌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공기업의 허술한 내부 통제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담당 직원이 113차례에 걸쳐 회계 문서를 조작하는 동안,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부서장들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실이 30일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의 한 지사에서 경리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 A씨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14개월간 총 30억 원을 횡령했다.
A씨의 범행 수법은 대담했다. 그는 정상적인 온라인 자금 이체 시스템인 ‘펌뱅킹’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수기 작성이 가능한 ‘일반 전표’를 허위로 꾸몄다. 이후 은행 창구를 직접 방문해 계약업체에 지급되어야 할 대금의 수취인 계좌번호란에 자신 혹은 친족의 계좌번호를 적어 넣는 방식으로 돈을 빼돌렸다. 이런 방식으로 이뤄진 횡령은 14개월간 113차례에 달했다.
도로공사는 A씨의 범행을 1년 넘게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지난 3월 한 계약업체로부터 "대금이 미납됐다"는 민원이 제기된 뒤에야 내부 감사에 착수해 횡령 사실을 파악했다.
조사 결과 A씨는 빼돌린 돈을 개인 투자 등에 사용했으며, 이 중 12억 원은 다시 거래처로 송금했으나 나머지 18억 원은 갚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로공사는 지난 5월 A씨를 파면 조치하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고발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도로공사 자체 감사에서는 소속 부서장들이 A씨에게 자금 집행 업무를 사실상 일임한 채 전표 심사나 결재 등 기본적인 관리 감독 업무를 소홀히 한 사실이 드러났다. 도로공사는 해당 부서장들에 대한 추가 징계 절차를 진행하는 한편, 회계 책임자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등의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준호 의원은 "주요 공공기관에서 충격적인 횡령 사건이 발생했는데, 함진규 사장이 기관을 제대로 관리·감독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며 "단순히 한 직원의 일탈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내부 자금업무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하고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