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검의 관봉권 띠지 폐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출범한 안권섭 특별검사팀이 19일 한국은행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며 본격적인 강제수사의 신호탄을 쐈다. 이번 수사는 검찰의 증거물 관리 부실을 넘어 의도적인 증거 인멸 여부를 가리기 위한 국가 사정기관의 정면충돌 양상을 띠고 있어 법조계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안권섭 특검팀은 이날 오전 9시경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 발권국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수색 검증 영장을 집행했다. 특검팀은 현장에서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관봉권의 고유 번호 부여 체계, 제조 공정상의 특징, 시중 유통 전 보관 및 지급 과정에 관한 내부 전산 자료와 관련 서류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관봉권을 묶는 띠지와 스티커의 재질 및 일련번호 관리 방식 등 물증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한 기초 자료 확보가 이번 압수수색의 핵심 목적으로 파악된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남부지검은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 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한국은행 관봉권을 발견해 압수했다. 관봉권은 한국은행에서 신권 상태로 포장된 현금을 의미하며, 이는 통상적인 자금 흐름과는 다른 특수한 경로를 통해 유출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압수물 관리 과정에서 해당 관봉권을 감싸고 있던 띠지와 부착된 스티커가 사라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띠지와 스티커는 해당 현금이 언제, 어느 금융기관을 통해 유출되었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이를 분실하거나 폐기했다는 것은 수사의 핵심 연결 고리를 끊어버린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대검찰청은 자체 감찰에 착수했으나, 실무진의 단순 행정 착오와 부주의에 의한 과실일 뿐 상급자의 조직적인 증거 은폐 지시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감찰 결과를 발표하며 사건을 일단락 지으려 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검찰의 셀프 감찰 결과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정 장관은 검찰 조직 내부의 온정주의를 경계하며 독립적인 제3의 기관을 통한 엄정한 진상 규명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결국 상설특검법에 의거한 특검 수사가 결정됐고, 안권섭 변호사가 특검으로 임명되면서 수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특검팀은 이번 한국은행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남부지검이 압수했던 관봉권의 원래 형태를 복원하고 유통 경로를 재구성할 방침이다. 만약 한국은행의 자료와 남부지검의 압수물 기록 사이에 모순이 발견되거나, 폐기된 띠지에 담긴 정보가 특정 인사나 세력과 연관되어 있음이 드러날 경우 수사는 검찰 수뇌부를 향한 직권남용 및 증거인멸 의혹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단순히 띠지 폐기 여부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전성배 씨와 관련된 금품 수수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관봉권의 출처가 확인될 경우 그 자금이 어떤 성격으로 전 씨에게 전달됐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정치권이나 관료 사회의 외압이 있었는지가 수사의 본령이 될 전망이다.
특검팀은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당시 압수물 관리를 담당했던 서울남부지검 실무자들을 차례로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또한 감찰 과정에서 누락된 부분은 없는지, 대검찰청의 감찰 보고서가 실제 사실관계와 부합하는지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안권섭 특검은 이번 수사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어떠한 성역도 두지 않고 객관적 증거만을 토대로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사는 국가 화폐 관리 시스템의 신뢰성과 검찰의 증거 관리 체계라는 두 가지 핵심적인 가치를 다루고 있다. 향후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검찰 개혁의 향방은 물론,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재판에도 막대한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만큼 특검팀의 행보 하나하나가 한국 사회의 투명성과 정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