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병의 짐까지 대신 메고 험준한 산을 오르다 굴러떨어진 스무 살 군인이, 군의 어처구니없는 늑장·부실 대응으로 골든타임을 놓쳐 끝내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경찰은 수사 끝에 현장 간부부터 대대장까지 5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사건은 지난해 11월 25일, 강원도 홍천 아미산에서 발생했다. 통신 장비 설치 훈련에 투입된 고(故) 김도현 일병은 "다리가 아프다"는 선임병의 12kg 군장을 떠안아, 자신의 군장 25kg을 포함해 총 37kg의 짐을 짊어지게 됐다. 김 일병은 험한 비탈길에서 이 짐들을 번갈아 옮기다 실족해 굴러떨어졌지만, 훈련을 인솔하던 간부와 선임병들은 한참 동안 그가 사라진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군의 초기 대응은 총체적 부실 그 자체였다. 부대는 오후 1시 36분쯤 김 일병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초 인지했고, 14분 뒤에는 김 일병의 "살려달라"는 외침까지 들었다. 그러나 119 신고는 즉각 이뤄지지 않았다. 김 일병을 발견한 시각은 오후 2시 29분이었으나, 첫 119 신고는 그로부터 27분이 더 지난 오후 2시 56분에야 이뤄졌다. 실종을 인지하고도 1시간 20분, 구조 요청을 듣고도 1시간 넘게 내부 보고와 통화로 허비하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그대로 흘려보낸 것이다.
구조 과정에서의 혼선은 비극을 더욱 키웠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산림청 헬기가 현장에 도착했으나, 군은 "군 헬기가 가고 있다"며 산림청 헬기를 철수시켰다. 하지만 정작 뒤이어 도착한 군 헬기는 나뭇가지에 로프가 걸린다는 등의 이유로 구조에 실패하고 그대로 복귀했다. 결국 오후 5시 18분, 다급해진 군이 다시 119에 헬기를 요청했고, 모든 구조 과정이 끝난 뒤 김 일병이 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18분이었다. 최초 실종 인지 후 무려 5시간 가까이 방치된 끝에 병원에 도착했지만, 이미 숨진 상태였다.
사건을 수사한 강원경찰청은 지난 6월 말, 현장에 있던 하사와 중사는 물론 지휘·감독 책임이 있는 포대장(중위), 소대장, 그리고 부대 최고 책임자인 대대장(중령)까지 총 5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군은 김 일병을 상병으로 추서하고 순직 처리했지만, 비상식적인 명령과 총체적 부실 대응이 한 젊은 군인을 죽음으로 내몬 이번 사건에 대해 엄정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