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연일 가파르게 상승하며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수입 물가 상승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자, 정부는 국민연금공단과 공식 환율 변동 대응 협의체를 가동하며 외환시장 안정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방침을 밝혔다. 이는 단순한 시장 개입을 넘어,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 투자 자금 흐름을 관리하여 고환율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을 조절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최근 엿새 연속 상승세를 기록하며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목할 점은 한국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이 많은, 즉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계속 오르는 이례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이상 고환율' 현상의 주요 배경으로는 국내 투자자들의 대규모 해외 금융 투자가 지목된다. 특히 국민연금과 개인 투자자들, 이른바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및 자산 투자가 급증하면서 달러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1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액은 43조 1,100억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작년 대비 3배 가까이 폭증한 수치이다.
고환율은 곧바로 서민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며 물가 불안을 심화시킨다. 수입산 밀가루 가격부터 기름값, 채소 등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서민 대표 음식인 칼국수 가격조차 지난해보다 5% 가까이 오르는 등 외식 물가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고환율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 주력 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저해하고, 내년 경제성장률을 2% 가까이 끌어올릴 것이라는 당초 전망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래에셋 리서치센터장 박희찬은 "기저 효과가 있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대다수 주력 산업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외환당국과 국민연금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결정한 것은 이러한 환율 급등세에 대한 비상 대응책이다. 협의체는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 투자 자금 집행 시기나 규모를 외환당국과 공식적으로 협의하여 환율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달러 수요를 조절해 환율 안정을 유도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는 정부가 막대한 규모의 국민연금 해외 투자 자금을 간접적인 환율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낸다.
한편, 고환율과 부동산 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 운용의 폭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환율과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 때문에 금리를 쉽게 내릴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과 환율 방어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내리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