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혁신처가 국가공무원법 제정 이후 76년간 이어져 온 공무원의 "복종의 의무" 조항을 삭제하고, 위법·부당한 상관의 지휘·감독에 대해 공무원이 의견을 제시하고 이행을 거부할 수 있는 명시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조치는 단순히 문구를 바꾸는 것을 넘어, 오랜 기간 공직 사회를 지배해 온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수직적 문화를 청산하고, 공무원이 법치주의 원칙 아래 소신껏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공직 문화를 조성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특히 작년 발생했던 "12·3 비상계엄 사태" 등을 거치면서 위법하거나 부당한 명령에 대한 공무원의 양심적 불복 권한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내부 고발자 보호 필요성이 커진 것이 이번 개정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했다.
인사혁신처가 25일 입법예고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은 현행 57조의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조항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는다. 대신 공무원의 복무 조항을 재정비하여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 조항을 신설했다. 이 신설된 조항은 공무원이 구체적인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상관에게 충분히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하며, 나아가 상관의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공무원이 그 이행을 거부할 수 있도록 명시적인 법적 보호막을 제공한다. 이는 공무원이 단순한 명령 집행자가 아닌, 법령에 따라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로서 행정의 합법성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능동적인 주체임을 법적으로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개정안은 또한 의견 제시나 정당한 이행 거부를 이유로 해당 공무원에게 어떠한 불리한 처우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못 박아, 소신 행정을 펼치는 공무원을 보호하는 장치를 법률 차원에서 극대화했다. 기존 국가공무원법 56조의 "성실 의무" 역시 "법령 준수 및 성실 의무"로 변경하여, 법령 준수가 공무원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임을 명확히 했다. 이러한 일련의 개정 작업은 오랫동안 공직 사회의 비효율과 부조리의 원인이었던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를 청산하고 합법성과 공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새로운 공직 윤리 기준을 확립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나타낸다.
이번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행정 과정의 투명성과 객관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법한 지시를 거부할 권한이 법에 명문화됨에 따라, 권력형 비리나 위법 행정이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사전에 차단되고, 공직 사회 내부의 자정 능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위법" 판단의 객관적 기준이 모호할 경우, 현장에서 상관의 지휘·감독과 하급 공무원의 이행 거부 사이에 혼란이 발생하거나, 이행 거부권이 업무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따라서 인사혁신처는 향후 법 시행 전까지 위법 판단 기준 및 거부 절차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일선 공무원들의 혼선을 최소화하고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공직 사회의 가족 친화적 환경 조성을 위한 내용과 비위 근절을 위한 조항도 함께 포함되었다. 육아휴직 사용 대상 자녀의 연령 기준을 기존 8세 이하에서 12세 이하(초등학교 6학년)로 상향 조정하여 초등 고학년 자녀를 둔 공무원 가정의 실질적인 돌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난임 치료를 별도의 휴직 사유로 추가하여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확대했다. 더불어, 스토킹 범죄나 음란물 유포 등 중대 비위 공무원에 대한 징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징계 시효를 기존 3년에서 10년으로 대폭 연장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징계 처분 결과를 피해자에게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했다. 이렇듯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은 공직 문화 혁신을 통한 행정의 질적 향상뿐만 아니라, 공직자의 삶의 질 향상 및 공직 윤리 확립이라는 다각적인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며, 공직 사회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개정안은 향후 입법 예고 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한 뒤 국회 논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