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동안 1천 건이 넘는 화재 및 구조 현장에 출동하며 일생을 바친 소방관이 백혈병 진단을 받은 데 대해, 법원이 이를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는 인사혁신처가 해당 소방관의 핵심 업무 기간을 2년 2개월로 한정하며 공무상 요양을 불승인했던 처분을 뒤집는 결과로, 현장 소방 공무원의 유해 환경 노출에 따른 질병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중요한 판례가 될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단독 문지용 판사는 최근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소방관 A 씨가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제기한 공무상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소방관 A 씨는 소방서 부서장, 당직근무 책임자, 소방서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근무하던 중 2021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공무상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그러나 인사혁신처는 A 씨의 전체 29년 경력 중 실제 화재 진압 및 구조 업무를 직접 수행한 기간이 2년 2개월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이는 소방 현장 지휘관 및 행정 업무 경력에 대해서는 화재 유해물질 노출 위험이 낮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인사처의 판단과는 달리, A 씨의 전체 현장 출동 건수가 1천여 건에 달한다는 점과 근무 이력 대부분이 화재 진압 및 구조 업무의 연속선상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현장 지휘관의 역할을 재조명하며, "현장 지휘관 역시 일선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화재 현장 중심부와 매우 인접한 위치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휘관이라는 보직이 화재 진압 및 유해물질 노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한 "원고에게 백혈병 관련 질병을 앓았거나 가족력이 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전혀 없다"는 점을 확인하며 질병 발병의 내재적 요인이 없음을 밝혔다. 이어 재판 과정에서 진행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의 "공무와 상병 사이에 업무 관련성이 있다"는 판단을 핵심적인 근거로 제시했다.
문 판사는 최종적으로 "원고는 소방공무원으로 장기간 근무하면서 백혈병 발병의 원인이 되는 유해물질에 장기간 노출됨으로써 백혈병이 발병하게 됐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판결은 소방관의 보직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화재 현장 출동 경험이 누적된 소방공무원의 백혈병 발병에 대한 공무 연관성을 폭넓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소방공무원들이 현장에서 노출되는 복합적 유해물질의 위험성을 사법부가 인정한 사례로서, 향후 유사 질병에 대한 공무상 인정 절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