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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민기, 한 시대를 품은 이름"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 | 입력 26-04-09 14:29



어떤 이름은 잊히고,
어떤 이름은 남는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어떤 이름은 한 시대의 온기를 품는다.

김민기.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우리는 단순히 한 명의 음악가를 떠올리지 않는다.

우리는 한 시대의 양심과,
그 시대를 견뎌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

군부독재의 어둠이 짙게 깔려 있던 시절,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웠던 시간 속에서
그는 노래했다.
그의 노래는 크지 않았지만
깊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진실했다.
그래서 그 노래는
사람들의 귀를 지나
가슴에 남았다.
‘아침이슬’.


그 노래는 하나의 음악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숨이었다.
억눌린 현실 속에서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작은 그러나 꺼지지 않는 불빛이었다.
그래서 그 노래는 금지되었고,
그래서 더 널리 퍼졌다.

진실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자를 위해 노래했다.
그러나 그것은
위로하는 노래가 아니었다.
함께 서 있는 노래였다.
공장 안에서, 거리에서,
이름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 곁에서
그는 같은 눈높이로
같은 시간을 견뎌냈다.

그의 음악은 연민이 아니라 연대였고,
그의 시선은 동정이 아니라 존엄이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학전’.
작은 소극장이었지만
그곳은 거대한 시작의 공간이었다.
수많은 청춘들이
그곳에서 자신의 첫 목소리를 찾았고,
수많은 배우들이

그곳에서 첫 무대를 밟았다.
그는 앞에 서지 않았다.
뒤에 있었다.
늘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빛을 받는 대신
빛을 만들어주는 사람.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그에게 아이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었다.
미래였고,
희망이었고,
이 시대가 끝내 지켜내야 할 이유였다.
그는 아이들을 향해
더 낮은 목소리로,
더 따뜻한 시선으로 다가갔다.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
아이들이 노래할 수 있는 세상,
아이들이 두려움 없이 자랄 수 있는 세상을

그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바랐다.
그래서 그의 작품과 공간 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을 위한 숨결이 있었다.
거창하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
그는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예술도, 음악도
결국 의미를 잃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끝까지
사람을 향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를 향했다.
아이들을 향했다.

시간은 흐르고,
그 역시 병과 마주해야 했다.
2023년 가을,
위암 4기 진단.
그 이후 이어진 투병 속에서도
그는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견뎌냈다.
그리고 2024년 7월 21일,
향년 73세.
그는 떠났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말은
너무도 담담했다.
“할 만큼 다 했다.”
“고맙다.”
그 말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었다.

후회도, 과장도 없이
그저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한 인간의 고요한 마침표.
그래서 더 울림이 크다.


우리는 지금
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는 떠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노래로,
공간으로,
그리고 기억으로.
군부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노동자의 하루 속에서도,
대중음악의 흐름 속에서도,
‘학전’의 작은 무대 위에서도,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그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른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당신이 있었기에

이 시대는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었다고.
당신이 있었기에
아이들의 내일이
조금 더 밝아질 수 있었다고.
김민기라는 이름은
이제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이 시대가 끝내 지켜야 할
하나의 약속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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