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가 4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과 리서치 기관들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한 달 사이 큰 폭으로 올렸다. 지난달 말 영국 리서치 회사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2.7%로 1.1%포인트 수정했다. JP모건체이스 역시 종전 2.2%였던 수치를 3%로 높여 잡으며 주요 기관 중 가장 높은 성장 가능성을 제시했다. BNP파리바와 씨티그룹도 각각 2.7%와 2.9%로 전망치를 수정하며 한국 경제의 회복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다는 점에 동의했다.
이 같은 전망치 수정은 지난달 23일 발표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시장의 예측을 크게 벗어난 데 따른 결과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1분기 GDP 성장률은 1.3%를 기록하며 2021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당초 한국은행이 지난 2월에 제시했던 1분기 전망치는 0.5% 수준이었으나 실제 결과는 이를 두 배 이상 웃돌았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실적 개선과 설비 투자 회복세가 GDP 숫자를 밀어 올린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블룸버그가 42개 기관을 조사해 산출한 성장률 전망 평균치는 2.1%였으나 이 수치는 조만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 대상 기관 42곳 중 아직 1분기 GDP 실적을 반영해 수치를 수정하지 않은 곳이 25곳에 달하기 때문이다. ANZ와 바클리 등 이미 수치를 조정한 기관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 경로가 반도체 업황의 우상향 곡선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수출 중심의 성장 엔진이 다시 가동되면서 내수 부진을 상쇄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성장률 전망치와 비례해 물가 상승 압력에 대한 경고등도 함께 켜졌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38개 주요 기관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 평균은 2.5%로 전월 대비 0.2%포인트 상승했다. 수치를 올린 기관은 17곳에 달했으나 하향 조정한 기관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특히 JP모건은 물가 전망치를 1.7%에서 2.7%로 1%포인트나 끌어올렸으며 DBS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도 2.6%에서 2.9% 사이의 높은 물가 상승률을 예고했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국제 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급등한 영향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최근 장중 1400원선을 위협하며 수입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유가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는 구조를 고려할 때 하반기에도 고물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성장률이 올라가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지만 수입 에너지 비용 상승과 환율 변동성이 내수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호조가 가져온 온기가 가계의 실질 구매력 저하로 이어지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는 대목이다. 경제 성장 속도가 붙으면서 금리 인하 시점을 서둘러 잡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물가 목표치인 2%대 진입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지표는 화려하지만 고금리와 고물가에 신음하는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냉골이다. 성장의 과실이 특정 업종에 집중되고 물가 상승의 고통은 보편적으로 확산되는 구조적 불균형을 어떻게 해소할지가 향후 경기 관리의 성패를 가를 핵심 쟁점이다.
이번 성장률 전망 상향은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수출을 중심으로 회복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고유가와 고환율이라는 대외 변수가 물가 상방 압력을 높이며 금리 정책의 기동성을 제약하고 있다. 고성장과 고물가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가계 부채 부담과 내수 침체라는 해묵은 과제를 안고 가야 하는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 궤도에 안착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하반기 수출 회복세의 지속 여부와 수입 물가의 전이 속도에 따라 올해 한국 경제의 최종 성적표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