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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있어야 의사도 남는다”…지역완결형 의료, 수요 조절 없인 어렵다

이정호 기자 | 입력 26-06-13 15:59



정부가 5년 안에 지역완결형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내놨지만, 의료계에서는 의사와 시설을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지역의료를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환자가 지역 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의료전달체계와 정책 구조를 함께 손보지 않으면, 새 제도도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김계현 연구부장은 12일 서울성모병원 플렌티컨벤션에서 열린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지역완결형 의료체계의 조건으로 환자 수요와 의료기관 간 협력체계를 꼽았다. 김 연구부장은 “의료는 단순히 시설만 확충한다고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에서 필수의료가 유지되려면 충분한 환자 규모와 숙련된 의료인력, 지속적인 교육·훈련, 병원 간 협력과 이송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병원 건물과 장비를 마련해도 환자가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이동하면 지역 의료기관은 경험을 쌓기 어렵고, 의료진도 지역에 남을 이유를 잃게 된다는 취지다.

김 연구부장은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정주 요건은 환자”라고 했다. 이어 “환자가 있어야 의사도 지역에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의료 문제를 의사 수 부족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되며, 환자가 실제로 지역 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는 환자가 살고 있는 지역 안에서 필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응급, 분만, 소아, 중증질환 등 필수의료를 지역 안에서 해결하겠다는 목표다. 그러나 의료계는 지역 병원 이용을 유도하는 전달체계 개편 없이 공급만 늘리면, 환자 흐름은 그대로 수도권으로 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강릉의료원 최안나 원장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최 원장은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 방안에 의료 수요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고 했다. 그는 “지역완결형 의료는 의사를 공급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환자 수요를 바꾸는 정책이 함께 가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강릉의료원 사례를 들며 지역의료 문제가 단순한 자원 부족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릉에 와 보니 의사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병상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며 “그럼에도 환자의 30%가 지역 밖으로 나가고 있다”고 했다. 지역 안에 의료 자원이 있어도 환자가 지역 병원을 선택하지 않는 구조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계가 제기한 또 다른 문제는 정부 정책 간 충돌이다. 최 원장은 보건복지부가 내놓는 통합돌봄, 지역의료, 공공의료 정책이 현장에서는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서별로 정책이 쪼개져 추진되면서 병원과 지자체가 실제 운영 단계에서 혼선을 겪는다는 것이다.

최 원장은 “부서별로 정책을 쏟아내기 전에 정책 간 정합성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왜곡된 현장 상황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지역의료 정책이 현장에 내려올 때 같은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정부 내부 거버넌스를 먼저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 제도 도입보다 기존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 원장은 “규제를 풀어주면 기존 인력과 자원만으로도 지역의료를 살릴 수 있는데 복지부 내 여러 부서로 권한이 나뉘어 있어 필요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의료 현장에서는 병상, 인력, 장비가 모두 부족한 지역도 있지만, 이미 있는 자원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해 환자가 빠져나가는 지역도 있다. 이 경우 필요한 것은 일률적인 공급 확대가 아니라 지역별 의료 이용 행태와 의료기관 기능을 분석한 뒤 맞춤형 조정에 나서는 일이다.

정부가 지역완결형 필수의료체계를 실현하려면 환자가 지역 병원을 신뢰하고 이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 병원에서 진료받을 때 불이익이 없고, 필요한 경우 상급병원으로 안전하게 이송되며, 다시 지역으로 회송되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의료진 역시 충분한 환자 경험과 교육, 협력 네트워크가 있어야 지역에 머물 수 있다.

지역의료 논쟁은 의사 수를 얼마나 늘릴 것인지의 문제를 넘어섰다. 환자가 어디로 가는지, 병원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어떤 권한으로 조정하는지가 함께 맞물려 있다. 지역완결형 의료체계가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공급 확대보다 먼저 환자 흐름과 정책 조정 구조를 바꾸는 작업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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