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한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 지은 직후, 미국 측에서 이번 합의의 핵심인 대미(對美) 투자 펀드의 수익 대부분을 미국이 가져갈 것이라고 밝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내세운 ‘상호 호혜적 결과’라는 설명과 달리, 사실상 ‘퍼주기 협상’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증폭될 전망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30일(현지시간) 한미 관세 협상 타결 발표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X) 계정에 “대한민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하는 대로 미국이 투자할 수 있도록 3,500억 달러를 제공하며, 이익의 90%는 미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대가로 한국이 조성하기로 한 3,500억 달러(약 487조 원) 규모의 투자 펀드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9할을 미국이 가져간다는 의미로, 사실상 투자 원금만 한국이 대고 과실은 미국이 챙기는 구조라는 점을 시사한다.
러트닉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즉각 한미 협상 타결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에 불을 붙였다. 앞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1일 오전 브리핑에서 "쌀·소고기 등 민감한 농축산물 시장을 지켜냈고, 상호 관세도 15%로 낮췄다"며 "척박한 일정 속에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얻어낸 호혜적 결과"라고 자평했다. 특히 3,500억 달러 규모의 펀드에 대해서도 ‘한미 조선협력펀드’(1,500억 달러)와 ‘첨단산업 투자펀드’(2,000억 달러)로 명명하며, 우리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돕는 전략적 투자 협력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이러한 설명 어디에도 투자 수익의 90%를 미국에 귀속시킨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러트닉 장관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우리 정부는 국민들에게 협상의 불리한 이면 합의 내용을 숨긴 채 성과만을 홍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미국이 이처럼 일방적인 수익 배분 구조를 요구한 것은 최근 타결된 일본과의 협상이 선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역시 미국과의 협상에서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를 약속하며,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조건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는 즉각 비판이 터져 나왔다. 한 경제 전문가는 "투자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다"며 "수익의 90%를 포기하는 조건이라면, 관세를 15%로 낮춘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확산하면서 이제 공은 우리 정부로 넘어왔다. 러트닉 장관의 발언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왜 이러한 불평등한 조건에 합의했는지,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미국 측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통령실은 현재까지 러트닉 장관의 발언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