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와 사법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2일,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한 긴급 현안 청문회를 오는 30일 열기로 의결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현직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소환하는 안건을 단독으로 처리하자, 조 대법원장은 "세종대왕은 법을 왕권 강화의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며 우회적으로 정치권의 압박을 비판했고, 이에 민주당이 "오만한 궤변"이라며 사과를 요구하는 등 양측의 충돌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법사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위원들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재석의원 15명 중 찬성 10표, 기권 5표로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 개입 의혹 관련 긴급 현안 청문회 실시 계획서 채택의 건'을 가결했다. 청문회에는 조 대법원장을 비롯해,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였던 지귀연 판사 등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민주당은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에서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파기환송된 배경에 조 대법원장과 당시 여권 인사들의 부적절한 회동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집중적으로 따져 묻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정치권의 공세에 조 대법원장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는 이날 대법원이 주최한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개회사에서 세종대왕의 사법 철학을 꺼내 들었다. 조 대법원장은 "세종대왕께서는 법을 왕권 강화를 위한 통치 수단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규범적 토대로 삼으셨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과 자신을 향한 사퇴 요구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고 특정 권력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시도라는 비판적 인식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발언으로 해석된다.
조 대법원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오만한 궤변을 늘어놓았다"며 "세종대왕의 이름을 빌려 국민의 정당한 개혁 요구를 '왕권 강화'로 매도한 것에 대해 즉각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논란이 커지자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의 발언은 세종대왕의 업적을 조명하고 기리려는 학술적 의도였다"고 해명했지만, 정치적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사법부 수장을 둘러싼 '대선 개입'이라는 중차대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가 확정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이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