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고등학교 선배인 변호사로부터 금품을 수수하고 재판 결과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현직 부장판사 김 모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공수처는 김 부장판사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는 전주 지역 로펌 대표 정 모 변호사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지난 3월 영장실질심사 당시 정 변호사는 대가성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인정하지 않는다는 짤막한 답변만을 남긴 바 있다.
공수처 조사 결과 김 부장판사는 전주지법 항소심 재판장으로 근무하던 약 2년의 기간 동안 정 변호사로부터 3,300만 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을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수처는 김 부장판사의 배우자가 바이올린 레슨 장소로 활용할 상가를 1년 동안 무상으로 제공받고, 현금 300만 원을 수수한 행위 등이 판결의 대가였다고 판단했다.
해당 기간 김 부장판사가 심리한 정 변호사의 수임 사건은 총 21건이다. 이 가운데 17건에서 피고인의 형량이 1심보다 낮아진 사실이 공수처 수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집행유예 기간 중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됐다.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가담 혐의로 실형을 살던 피고인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경우도 포함됐다.
수사 당국은 이 같은 감형 사례가 지역사회와 교도소 수감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면서 정 변호사의 로펌에 특정 사건 수임이 집중된 정황을 포착했다. 두 사람은 주요 재판 선고 전후를 기점으로 2년간 190여 차례에 걸쳐 직접 통화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공수처는 보고 있다.
김 부장판사 측은 기소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현금 300만 원은 배우자가 정 변호사 자녀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받은 정당한 수강료이며, 상가 임대차 과정에서도 부당한 이득을 취한 바 없다는 것이 김 부장판사의 입장이다. 특히 1심 판결을 뒤집는 재판 거래 행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을 거듭 강조했다.
앞서 법원은 공수처가 청구한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공수처는 영장 재청구 절차를 밟는 대신 수사를 마무리하고 불구속 기소를 결정했다. 법조계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현직 법관의 직무 윤리와 재판의 공정성에 직결된 사안인 만큼 향후 공판 과정에서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 입증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법관과 변호사 사이의 유착 의혹이 정식 재판으로 넘겨짐에 따라 사법부 신뢰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