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교생 살해범 장윤기 사건의 부실 수사와 내부 유착 의혹이 불거진 뒤 정부가 경찰 순환인사제 확대를 추진하자 일선 경찰관들이 반발하고 있다. 장기 근무에 따른 지역 유착을 차단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과 생활권 침해와 현장 전문성 저하를 우려하는 경찰 내부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지난 16일 경찰 수사 내부비리 근절과 통제 강화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경찰관의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이 사건 관계인일 경우 이를 지휘부에 신고하고 다른 경찰관서로 사건을 넘기는 상피제를 도입하는 한편, 일부 계급에만 적용해 온 순환인사 규정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은 장윤기의 아버지인 현직 경찰관과 지역 경찰관들의 연고 관계가 사건 수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는 수사정보 유출과 증거물 처리 개입, 사건 축소 의혹이 잇따랐고 경찰 수사팀 관계자에 대한 강제수사도 진행됐다.
정부는 한 지역에서 장기간 근무하면서 형성된 인맥이 수사의 독립성을 훼손할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경찰서장급인 총경은 같은 시·도경찰청에서 연속 3년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제한받지만 경정과 경감, 경위 등 실제 수사를 담당하는 계급에는 동일한 의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10년간 시·도경찰청 경계를 넘어 전보된 비율은 경정 12.1%, 경감 6.5%, 경위 3.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은 수사팀장과 실무자가 포함된 경감 이하 계급까지 순환인사 대상을 확대할지, 직무와 계급별로 기준을 달리 적용할지를 수사 쇄신 태스크포스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일선 경찰관들은 대책이 공개된 직후 내부 게시판과 직장협의회를 통해 반대 입장을 내기 시작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라며 특정 사건을 이유로 경찰 조직 전체에 부담을 지우는 방식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순환근무가 확대되면 주거 이전과 자녀 교육, 배우자의 직장 문제 등 경찰관 개인과 가족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커진다는 주장이다.
치안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경찰 업무는 지역의 범죄 특성과 인물 관계, 지리와 교통 여건을 지속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만큼 잦은 인사이동이 수사와 범죄 예방의 연속성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경찰관의 장기 근무를 모두 유착 가능성으로 연결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순환인사가 조직 이탈을 재촉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경감 이하 계급까지 강제 전보가 확대될 경우 승진이나 보직 경쟁보다 생활 안정성을 택해 조기 퇴직을 고민하는 인원이 늘어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도서·벽지와 기피 관서에 인력을 안정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지원 대책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정부가 함께 내놓은 상피제와 외부 통제 강화 방안에는 상대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족이 연루된 사건은 수사관서가 스스로 회피하도록 하고, 국가경찰위원회 산하에 민간 조사관이 참여하는 별도 조사기구를 설치해 부실·불공정 수사와 보완수사 요구 미이행 여부를 조사하는 방안이다. 외부 조사기구는 약 100명 규모로 설계될 예정이다.
정부는 경찰이 검사나 향후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수사팀과 수사관서 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공소시효나 구속기간 만료가 임박한 중요 사건에서는 기관 간 합동수사 요청에 즉시 응하도록 관련 규정을 손질할 방침이다.
순환인사제의 구체적인 대상과 주기, 이동 범위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수사·감찰 등 유착 위험이 큰 직무부터 적용할지, 시·도 내부 전보와 전국 단위 전보를 어떻게 구분할지도 후속 논의 대상이다.
장윤기 사건에서 드러난 수사 개입과 은폐 의혹은 경찰 내부 통제의 허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한 사건의 책임을 이유로 현장 경찰 전체의 근무지를 일률적으로 바꾸는 대책이 실제 비리를 차단할 수 있는지, 지역 치안의 공백과 조직 내부 부담은 어떻게 줄일지가 순환인사제 설계 과정에서 먼저 답해야 할 문제로 남았다.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