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흥행영화 가운데 제작 초기에 검토한 배우와 실제 스크린에 등장한 배우가 달랐던 작품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출연 제안을 받은 배우가 작품을 고사하거나 촬영 일정과 건강 문제 등이 겹치면서 배역의 주인이 바뀌었고, 최종 배우의 연기가 작품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남았다.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 남자 근세 역은 박명훈이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제작 비화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한 변희봉의 출연을 염두에 뒀지만, 변희봉이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에 들어가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박명훈은 봉 감독이 영화 "재꽃"에서 자신의 연기를 본 뒤 연락해 출연이 성사됐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영화의 반전을 지키기 위해 촬영부터 개봉 이후까지 약 1년 동안 배역을 공개하지 않았고 공식 홍보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곡성"의 무명 역에는 가수 현아가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 현아는 이후 방송과 인터뷰에서 나홍진 감독의 제안을 받았지만 연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큰 작품에 참여하는 것이 두려워 고사했다고 설명했다. 무명 역은 최종적으로 천우희가 맡았다.
"곡성"의 주요 남성 배역에도 여러 배우가 거론됐다. 종구 역에는 마동석이 검토됐으나 촬영 일정 등의 문제로 합류하지 못했고 곽도원이 최종 출연했다. 무속인 일광 역에는 류승룡이 먼저 거론됐지만 황정민이 캐스팅돼 극의 긴장감을 이끌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서 김옥빈이 연기한 태주 역에도 다른 배우가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에는 김희애 등이 후보로 거론됐지만 최종적으로 김옥빈이 발탁됐다. 다만 제작 초기 후보 검토와 정식 출연 제안은 서로 다른 단계이므로 구체적인 협의 과정까지 모두 확정된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
영화 "마녀"의 귀공자 역은 이종석이 먼저 캐스팅 논의를 진행했던 배역이다. 이후 출연이 성사되지 않으면서 최우식이 역할을 맡았다. 박훈정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이종석과 최우식의 이미지가 비슷해 대체한 것은 아니며 캐스팅 과정에서 나온 우연이라고 설명했다.
"과속스캔들"의 남현수 역도 임창정이 먼저 제안받은 배역으로 알려졌다. 임창정은 다른 작품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출연하지 못했고 차태현이 남현수 역을 맡았다. 영화는 차태현과 박보영, 왕석현의 호흡을 앞세워 흥행에 성공했다.
이 밖에도 "7번방의 선물" 이용구 역과 "베를린" 표종성 역을 두고 각각 김인권과 이병헌이 초기 후보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제작진이나 배우가 공식 인터뷰에서 협상 과정과 불발 이유를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내용도 있어 단순 후보 검토와 출연 확정 직전의 하차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는 시나리오 개발과 투자, 촬영 일정, 배우의 건강과 작품 선택에 따라 캐스팅이 반복적으로 바뀐다. 같은 대본이라도 배우의 나이와 이미지, 연기 방식에 따라 인물 설정과 장면 구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최종 캐스팅은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과정이다.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캐스팅 비화에는 제작진이 여러 후보 가운데 한 명을 검토한 사례가 정식 출연 제안을 거절한 것처럼 확대된 내용도 섞여 있다. 배우나 감독의 인터뷰, 제작사의 공식 자료가 없는 경우에는 캐스팅 확정 여부와 불발 사유를 단정하지 않는 확인이 필요하다.
이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