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예금과 적금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하는 가계가 늘고 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인 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예금담보대출로 수요가 옮겨가면서 5대 시중은행의 관련 잔액은 7조원에 근접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예금담보대출 잔액은 지난 7월 말 6조8209억원으로 집계됐다. 주택청약종합저축을 담보로 받은 대출도 포함한 수치다. 올해 초 6조원대 초반이었던 잔액은 5월 이후 빠르게 늘어 최근 석 달 사이 8% 이상 증가했다.
예금담보대출은 은행에 맡긴 정기예금이나 적금, 청약통장 등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상품이다. 금융회사와 상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예·적금 잔액의 90∼100% 범위에서 대출받을 수 있다. 은행이 상환 재원인 예금을 확보하고 있어 별도의 신용평가 부담도 상대적으로 작다.
수요가 몰린 배경에는 DSR 규제 예외가 있다. DSR은 연소득에서 모든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 대출 한도를 제한하는 제도다. 그러나 본인 명의 예·적금을 담보로 한 대출은 담보가 확실하다는 이유로 산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한도가 찬 차주도 예금이 있다면 추가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금리도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예금담보대출 금리는 통상 담보로 제공한 예금금리에 1%포인트 안팎을 더하는 방식으로 책정된다. 예금금리가 연 3%라면 대출금리는 연 4% 안팎이 되는 셈이다. 신용도가 대출금리에 미치는 영향이 작아 신용대출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받는 경우도 있다.
만기를 앞둔 예금을 중도 해지하는 것보다 유리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한다. 정기예금을 만기 전에 깨면 약정금리보다 낮은 중도해지 금리가 적용돼 이자 손실이 발생한다. 예금담보대출을 이용하면 예금 만기와 약정금리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기간에만 자금을 빌릴 수 있다.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않는 상품이 많아 단기 자금 수요에도 활용된다.
대출 규제 강화가 예금담보대출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줄이고 가산금리를 올리는 한편 모기지보험 가입 제한과 대출모집인 영업 축소 등 가계대출 관리 조치를 잇달아 시행했다. 신용대출 관리도 강화되면서 차주가 활용할 수 있는 대출 통로는 한층 좁아졌다.
규제를 받지 않던 다른 대출 상품에는 이미 관리가 시작됐다. 주식을 담보로 투자 자금을 빌리는 스톡론은 지난 6월 말 잔액이 1조원을 넘어섰지만 규제 적용 이후 7월 말 7915억원으로 줄었다. 한 달 만에 약 2100억원 감소한 것이다. 반면 예금담보대출은 DSR 예외가 유지되면서 증가세가 이어졌다.
예금담보대출도 빚이라는 점은 같다. 대출 기간에는 담보로 제공한 예금을 자유롭게 인출하거나 해지하기 어렵다. 만기까지 원리금을 갚지 못하면 은행이 담보 예금에서 미상환 금액을 차감한다. 예금이 있다고 해도 대출이자가 예금이자보다 높기 때문에 이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비용도 커진다.
예금담보대출 잔액 증가는 대출 규제가 가계의 자금 수요 자체를 줄이기보다 규제 밖 상품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를 DSR에 포함하면 실수요자의 단기 자금 조달이 막힐 수 있고, 예외를 그대로 두면 우회 대출이 계속 늘어날 수 있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와 예금담보대출의 규제 예외를 어디까지 병행할지가 남은 쟁점이다.
박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