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포로들에게서 대량의 피를 뽑은 뒤 말과 양, 개, 토끼, 닭의 혈액을 주입한 사실이 일본 육군의 군의학 기록을 통해 드러났다. 전장에서 사람의 혈액을 구하기 어려울 때 동물 혈액을 대신 사용하는 방안을 찾겠다며 살아 있는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해당 내용은 1940년 8월 1일 발행된 일본 육군 군의단 기관지 "군의단잡지" 제327호에 실렸다. 보고서 제목은 "급성 대량 출혈에 대한 이종혈 수혈에 관하여"로, 일본 육군 군의대좌 사이토 쓰토무가 작성했다.
보고서의 바탕이 된 연구는 일본 육군성 의무국이 1940년 3월 개최한 육군 군진의약학연구회에서 발표됐다. 일본군은 부상병에게 공급할 사람의 혈액이 부족한 상황에 대비해 보존혈과 혈청, 건조혈액, 사체 혈액 등을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사이토는 이 과정에서 동물의 신선한 혈액을 사람에게 직접 넣는 방안을 제시했다.
실험은 1938년 가을 중국에서 진행됐다. 대상자는 신원이 기록되지 않은 포로 23명이었다. 실험 장소는 보고서에서 삭제돼 정확한 위치가 남아 있지 않다.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은 실험 대상자의 몸에서 1200㎖에서 최대 2500㎖의 혈액을 강제로 빼냈다. 성인 체내 혈액량의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양이다. 대상자가 심각한 출혈 상태에 빠지자 말의 혈액을 대량으로 수혈하고 신체 반응을 관찰했다.
다른 실험에서는 사람의 목을 절개한 뒤 혈관 겸자로 경동맥의 혈류를 막고 동물 혈청을 동맥에 주입했다. 이후 다시 피를 채취해 동물 혈액 성분이 사람의 혈관 안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살폈다.
닭의 혈액을 이용한 실험도 기록됐다. 일본군은 세포핵을 가진 닭의 적혈구가 사람의 혈액 속에서 얼마나 오래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혈 이후 사흘 동안 현미경 검사를 반복했다. 실험 대상자들에게서는 혈뇨와 고열, 오한 등 급성 거부반응이 발생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지난 6월 일본 육군 군의단 기관지에서 해당 보고서를 찾아 처음 보도했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의 731부대죄증진열관은 이어 6월 23일 "군의단잡지" 제327호 원본을 공개하고 실험 내용을 분석했다. 신화통신의 원본 공개 보도
이 기록이 곧바로 731부대가 해당 실험을 직접 시행했다는 사실까지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에는 실험 장소와 수행 부대가 명시돼 있지 않다. 진열관 측은 잡지에 실린 내용이 당시 일본군 관계자의 증언과 일치한다며 일본군 의료조직 전반의 인체실험 실태를 보여주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일본 내 의과대학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이뤄졌다는 기록이 추가로 나왔다. 교도통신은 9일 교토부립의대와 규슈제국대, 구마모토의대가 중일전쟁 전후 어린이를 포함한 환자들에게 말과 소, 염소의 혈액이나 혈액형이 다른 피를 주입한 논문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구마모토의대에서는 뇌 수술을 받은 남성이 말의 혈액을 수혈받은 뒤 숨졌다. 골수염을 앓던 9세 남자아이도 21일 동안 보존된 혈장을 주입받은 직후 사망했다. 일본 대학 연구자가 중국 난징의 한 병원에서 말의 보존혈을 환자에게 넣은 사례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일본 의과대학 실험 관련 보도
일본군 군의학 기관지에 실험 과정과 부작용이 연구 성과처럼 게재되고, 민간 의과대학에서도 유사한 실험이 이어졌다는 기록은 전쟁 수행과 의학 연구가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보여준다. 남은 기록에서 실험 대상자의 신원과 사망 여부, 실험을 수행한 부대와 책임자가 어디까지 확인될지가 추가 규명의 핵심이다.
이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