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사용했느냐가 한 인간의 삶을 증명한다
우리는 평생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살아간다.
더 좋은 집을 갖기 위해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경쟁하며, 조금이라도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쉼 없이 달린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통장의 숫자인가.
건물의 개수인가.
자동차와 명품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삶에 남겨 놓은 따뜻한 흔적인가.
이 질문 앞에서 세계적인 면세점 사업가이자 자선가였던 척 피니(Chuck Feeney·1931~2023)의 삶은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그는 DFS(Duty Free Shoppers)를 공동 창업해 막대한 부를 일군 사업가였다. 하지만 그를 역사에 남게 만든 것은 돈을 벌어들인 능력이 아니었다.
그 돈을 내려놓을 줄 알았던 용기였다.
척 피니가 설립한 애틀랜틱 필랜스로피스(The Atlantic Philanthropies)는 활동 기간 동안 교육·보건·인권·사회적 형평성 등을 위해 5개 대륙에 걸쳐 80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재단은 전 재산을 생전에 사회에 환원한다는 목표를 실천한 뒤 2020년 문을 닫았다.
■ 그는 부자가 되는 법보다 ‘부를 떠나보내는 법’을 보여줬다
돈을 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자신이 어렵게 축적한 재산을 기꺼이 사회로 돌려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그것을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척 피니의 기부가 특별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기부는 오랫동안 익명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이름을 건 건물을 세우기보다 교육과 의료, 연구와 인권을 위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의 지원으로 5개 대륙에서 1,000개가 넘는 건물이 세워졌지만, 그 건물들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돈을 내고 이름을 남기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척 피니는 돈을 내고도 이름을 지웠다.
바로 이 차이가 그의 삶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기부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삶으로 보여줬다.
■ “Giving While Living”… 살아 있을 때 나누라
척 피니의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있다.
‘Giving While Living.’
살아 있는 동안 나누라는 뜻이다.
죽은 뒤 재산을 남기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척 피니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자신의 돈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직접 보고 싶어 했다.
그에게 돈은 보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움직여야 할 힘이었다.
한 학생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되고, 한 환자에게는 치료의 희망이 되며, 한 연구자에게는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이 되고,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했던 누군가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다리가 되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한 돈의 가치였다.
그는 재산을 움켜쥐는 대신 세상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을수록 그의 이름은 더욱 커졌다.
척 피니의 철학은 이후 세계적인 자선 활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빌 게이츠 역시 그를 ‘Giving While Living’의 궁극적인 본보기로 평가했다.
■ 진짜 부자는 통장 잔액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척 피니의 삶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부자’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재산이 많으면 부자인가.
물론 경제적인 의미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자산이 존재한다.
사람에게 남긴 가치다.
누군가를 살렸다면 그것은 재산이다.
누군가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었다면 그것도 재산이다.
절망 속에 있던 사람에게 다시 살아갈 희망을 주었다면 그것 역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거대한 재산이다.
척 피니는 막대한 돈을 세상에 돌려주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전보다 훨씬 적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가 남긴 것은 은행계좌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건물이 아니라 기회였다.
돈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80억 달러가 아니다
척 피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억만장자였으니까 가능한 일 아닌가.”
그러나 그의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기부금의 액수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80억 달러를 기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살 수는 있다.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
재능을 나눌 수도 있고, 지식을 나눌 수도 있으며, 시간을 나눌 수도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도 나눔이다.
어려운 후배에게 길을 알려주는 것도 나눔이다.
아픈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도 나눔이다.
세상은 거대한 기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작고 평범한 선의가 모여 세상을 움직인다.
따라서 척 피니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어쩌면 이것일 것이다.
“나눔은 부자가 된 다음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 가운데 무엇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성공’을 잘못 정의해 왔다
우리 사회는 성공을 숫자로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얼마를 버는가.
어느 아파트에 사는가.
어떤 자동차를 타는가.
어떤 직함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날에는 이런 질문들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질까.
그때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오히려 단순할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내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행복해진 사람이 있었는가.
나는 받은 것만큼 세상에 돌려주었는가.
척 피니의 삶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 질문에 자신의 평생으로 답했기 때문이다.
그는 부자가 되었지만 부에 갇히지 않았다.
돈을 가졌지만 돈의 노예가 되지 않았다.
성공했지만 성공을 자신의 영광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 가장 아름다운 유산은 다음 세대에게 ‘가능성’을 남기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지 고민한다.
집을 남기고 싶어 하고, 땅을 남기고 싶어 하며, 조금이라도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부모의 마음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재산만이 아닐 것이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것을 사회와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런 삶의 태도야말로 돈보다 오래가는 유산이다.
척 피니가 남긴 진짜 유산도 80억 달러라는 숫자 그 자체만은 아니다.
그가 보여준 삶의 방식이다.
“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 질문을 다음 세대에 남겼다는 사실이다.
■ 가진 것보다 내려놓은 것으로 기억되는 사람
1931년 태어나 2023년 92세로 세상을 떠난 척 피니.
그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는 가진 것 때문에 위대했던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위대했던 사람이다.
돈은 결국 주인을 떠난다.
아무리 많은 재산도 영원히 가지고 갈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건넨 기회는 누군가의 삶에서 계속 살아간다.
내가 도운 한 명의 학생이 훗날 수백 명을 가르칠 수도 있다.
내가 지원한 연구가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내가 건넨 작은 친절 하나가 절망하던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그렇게 나눔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동하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진정한 부는 소유가 아니라 순환인지 모른다.
■ 당신의 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척 피니는 우리에게 거대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당신이 가진 것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억만장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한다.
돈이 많든 적든, 지위가 높든 낮든, 누구에게나 나눌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돈이 없다면 시간을 나눌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경험을 나눌 수 있다.
경험이 부족하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날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 놓을 수 있는 것은 많다.
한 사람의 미소.
한 아이의 꿈.
한 청년의 기회.
한 환자의 희망.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따뜻한 이름.
척 피니는 자신의 재산을 거의 모두 내려놓았지만 그의 삶은 오히려 더 큰 부를 남겼다.
그것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부다.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부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역설적인 진실 하나를 보여주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반드시 가장 부유한 것은 아니다.
가진 것을 의미 있게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어쩌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 역시 이제 성공의 기준을 조금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벌었는지만 묻지 말고,
어떻게 벌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얼마나 가졌는지만 보지 말고,
어디에 사용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무엇을 남겼는지만 따지지 말고,
누구를 살리고 누구에게 희망을 주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척 피니가 떠난 뒤에도 그의 철학이 살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벌었기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나누었기에 위대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돈보다 오래 남는 한 인간의 진정한 유산이다.
이명기 대기자(논설위원)
한국미디어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