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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관심도 사랑이다

이명기 논설위원 (대기자) | 입력 26-09-09 12:40



잊히지 않는 러브레터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참 쉽다.
누군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평생 한 번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만 사랑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세월을 살아보면 알게 된다.

사랑은 거창한 말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밥은 먹었어?”
“오늘 많이 힘들었지?”
“집에는 잘 들어갔어?”
“아픈 곳은 없어?”
“잠은 잘 잤어?”

어쩌면 우리가 너무 흔하게 생각했던 이 짧은 한마디 속에 가장 깊은 사랑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사랑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관심도 사랑이다.

아니, 어쩌면 사랑의 시작과 끝은 결국 관심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꾸 눈이 간다.

오늘 표정은 어떤지, 목소리는 평소와 같은지, 밥은 먹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별일 없는 하루였으면 좋겠고, 좋은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축하해 주고 싶고,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가 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사랑이다.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하면 뜨거운 고백부터 떠올린다.

꽃다발과 선물, 여행과 특별한 날, 화려한 이벤트를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도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특별한 어느 하루보다 평범한 수많은 날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침에 눈을 뜨며 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좋은 음식을 보면 함께 먹고 싶은 마음.

좋은 풍경을 보면 사진을 찍어 보내주고 싶은 마음.

길을 걷다가 문득 그 사람이 좋아하던 노래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게 되는 마음.

아무 이유 없이 오늘은 괜찮은지 궁금해지는 마음.

바로 그런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관심이 사라지는 순간 조금씩 멀어진다.

예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안부를 묻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어디에 있는지도, 누구와 있는지도, 아픈지 건강한지도 더 이상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때 사람은 말보다 먼저 느낀다.

사랑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미워한다는 것은 아직 그 사람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감정도, 아무런 궁금증도 남지 않는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 준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내가 늦게 들어가면 걱정하고, 아프다고 하면 약은 먹었는지 묻고, 힘들다고 하면 이유를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행복이다.

우리는 그런 관심을 너무 쉽게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때로는 귀찮다고 생각하고, 간섭이라고 생각하고, 잔소리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날 그 관심이 사라지고 나면 알게 된다.

그 사람이 얼마나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떠난 뒤에야 알게 되는 사랑이 있다.

함께 있을 때는 몰랐다.

왜 그렇게 밥을 먹었는지 묻는지.

왜 그렇게 늦으면 연락하라고 했는지.

왜 피곤해 보이면 쉬라고 했는지.

왜 작은 변화까지 알아보며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았는지.

그때는 그저 일상의 대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사람이 내 곁에서 멀어진 뒤, 더 이상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때 문득 깨닫는다.

그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사랑은 때로 떠난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헤어진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미 끝난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편에서는 계속 그 사람이 살아간다.

계절이 바뀔 때 생각나고, 비가 오는 날 생각나고, 오래된 노래 한 곡에 기억이 되살아난다.

함께 걸었던 길을 지나가면 그날의 표정이 떠오르고, 익숙한 향기가 스치면 오래전 기억 하나가 가슴을 건드린다.

그것은 미련일 수도 있고 추억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사람은 기억을 지운다고 해서 마음까지 지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은 어쩌면 한 사람에게 보내는 늦은 러브레터인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때는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이야기.

“당신의 관심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당신이 내 하루를 궁금해했던 것.

내 목소리 하나만 듣고도 기분을 알아차렸던 것.

내가 아프면 함께 걱정했던 것.

좋은 일이 생기면 나보다 더 기뻐했던 것.

내가 힘든 날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었던 것.

그 모든 순간이 사랑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사랑을 잃고 나서야 사랑을 알아보는 것일까.

왜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고, 떠난 뒤에서야 그 사람의 빈자리를 바라보는 것일까.

인생은 우리에게 수없이 같은 가르침을 반복한다.

사람이 영원히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때 표현하라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늘 늦는다.

자존심 때문에 늦고, 바쁘다는 이유로 늦고, 다음에 하면 된다고 생각하다 늦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말 말할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 사랑은 미루지 않아야 한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

걱정되면 걱정된다고 말해야 한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해야 한다.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약한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심을 표현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용기다.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마음을 건네는 일.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진심을 말하는 일.

그것이 사랑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용기다.

사랑은 완벽한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이 아니다.

부족한 두 사람이 서로의 부족함을 조금씩 이해하는 과정이다.

때로 싸우고, 서운해하고, 오해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 서로에게 다시 한 번 묻는 것이다.

“그래도 당신은 괜찮은가.”

그 질문이 남아 있다면 사랑도 아직 남아 있는 것인지 모른다.

특히 시간이 지나도 한 사람의 안부가 궁금하다면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정말 그 사람을 잊은 것인가.

아니면 애써 잊은 척하며 살아온 것인가.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한 옛사랑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사람은 기억 속에서 늙지 않는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어느 봄날의 얼굴로, 어느 여름날 함께 웃었던 모습으로, 어느 가을날 손을 잡았던 온기로, 어느 겨울날 서로를 걱정하던 목소리로 남아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잊히지 않는 러브레터 한 장쯤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편지로 쓰지 않았더라도 마음속에서 수없이 쓰고 지운 편지.

보내지 못한 문장.

“그때 조금만 더 잘할걸.”

“당신 마음을 조금만 더 알아줄걸.”

“조금만 덜 화낼걸.”

“한 번만 더 안아줄걸.”

“사랑한다고 더 많이 말할걸.”

인생에서 가장 아픈 문장은 대부분 ‘그때 그랬어야 했다’로 시작한다.

하지만 사랑은 후회만 하기에는 너무 짧다.

아직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안부를 물어보면 된다.

아직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굴을 보면 된다.

아직 마음이 남아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면 된다.

결과가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두 사람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진심을 숨긴 채 평생 후회하는 것보다 한 번쯤 진심을 전하는 편이 더 인간다운 선택일 수 있다.


사랑에는 소유가 아니라 존중이 필요하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의 모든 것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 기다릴 줄 아는 마음.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진심은 숨기지 않는 것.

그것 역시 사랑이다.

관심도 마찬가지다.

관심과 집착은 다르다.

관심은 상대를 바라보지만, 집착은 상대를 통제하려 한다.

관심은 “괜찮아?”라고 묻지만, 집착은 “왜 내 뜻대로 하지 않아?”라고 묻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좋은 사랑은 상대가 자기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일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사랑의 모습도 달라진다.

젊은 날에는 함께 있는 시간이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알게 된다.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

무사히 하루를 보내기를 바라는 것.

아프지 말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

자기 곁이 아니어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그런 마음 역시 깊은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사랑을 화려한 약속으로 정의하고 싶지 않다.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보다 오늘 하루 당신을 걱정하는 마음을 믿고 싶다.

백 송이 장미보다 힘든 날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가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값비싼 선물보다 아플 때 건네주는 따뜻한 죽 한 그릇이 더 큰 사랑일 수 있다.

사랑은 그렇게 평범한 얼굴로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지나간 사랑이 다시 생각난다면 너무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진심이었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어떤 사람은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잘 놓아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좋았던 기억은 좋은 기억대로, 아팠던 기억은 삶의 교훈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잘 지냈어요?”

그 한마디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 말 안에는 보고 싶었다는 마음도, 걱정했다는 마음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관심은 사람을 살게 한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누군가 내 안부를 궁금해한다는 사실.

누군가 내 하루를 걱정한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외로운 시간을 견딜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모에게 전화 한 통을 하고, 아이에게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물어보고, 오래된 친구에게 잘 지내냐고 연락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자.

사랑은 생각만 해서는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마음은 표현될 때 비로소 상대의 마음에 도착한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보고 싶으면서도 연락하지 않는다.

걱정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묻지 않는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뒤 후회한다.

그때 전화 한 통 할걸.

그때 만나자고 할걸.

그때 솔직하게 말할걸.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마음속에 아직 한 사람이 있다면 너무 오래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

거창한 고백이 아니어도 된다.

“잘 지내?”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리고 언젠가 나 자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사랑했던 날들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했고, 행복하기를 바랐고, 함께 웃었던 시간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

헤어졌다고 해서 사랑했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했던 기억은 한 사람의 삶 안에서 오래도록 빛나는 작은 별이 된다.

우리는 어쩌면 평생 그 별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문득 생각나는 사람.

수많은 인연을 만나도 마음 한편에 조용히 남아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인생의 잊히지 않는 러브레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아마 이렇게 끝날 것이다.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곁에 있어도 좋고, 멀리 있어도 좋다.

다시 만날 수 있어도 좋고, 추억으로 남아도 좋다.

한때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지금도 당신의 안부가 문득 궁금하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관심도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반드시 “사랑한다”는 말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잊지 않고 있다는 것.

걱정하고 있다는 것.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그 마음 하나가 어쩌면 우리가 평생 쓰고 있는 가장 길고 아름다운 러브레터일 것이다.


한국미디어일보
이명기 대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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