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자산을 지켜야 할 은행 직원이 거액의 현금을 인출한 80대 노부부의 개인 정보를 빼내 자택에 침입, 강도짓을 벌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범행 후 태연하게 은행에 정상 출근해 일하던 이 직원은 범행 8시간 만에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금융기관의 신뢰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사건에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경기 포천경찰서는 28일, 특수강도 혐의로 포천시내 한 은행에 근무하는 30대 남성 직원 A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이날 새벽 4시경 포천시의 한 아파트 3층에 창문을 통해 몰래 침입한 뒤, 잠자고 있던 80대 부부를 둔기로 위협하고 현금과 귀금속 등 수천만 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항하던 남편 B(82) 씨가 손목 등을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새벽의 비극을 저지른 A씨의 행각은 대담함을 넘어 파렴치했다. 그는 범행 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아침이 되자 평소와 다름없이 은행으로 출근해 고객을 맞이하며 업무를 봤다.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CCTV 동선 추적과 탐문 수사를 통해 A씨를 용의자로 특정했고, 이날 낮 12시경 은행 창구에서 일하고 있던 그를 현장에서 검거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번 범행은 A씨가 은행 내부 전산망을 통해 고객 정보를 불법적으로 이용한 '계획범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인 B씨 부부가 이달 초, 해당 은행 창구를 방문해 거액의 현금을 인출한 사실을 알게 된 A씨가 이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내부 시스템을 통해 부부의 나이, 주소 등 개인 정보를 손쉽게 파악한 뒤,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고객 정보 보호에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낸 금융기관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은행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고객의 금융 정보와 신상 정보를 빼내 범죄에 악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추가 범죄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는 한편, 해당 은행을 상대로 고객 정보 관리 실태 전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금융감독원 역시 해당 은행의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는 없는지 등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를 예고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곳'에서 벌어진 직원의 배신 행위가 금융권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