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세금으로 10% 할인 혜택을 제공해 인기가 높은 지역화폐의 판매를 대행하는 농협 지점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타인 명의로 상품권을 대량 구매해 온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관리·감독의 최일선에 있어야 할 금융기관 책임자가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사익을 편취한 것으로, 지역화폐 시스템의 신뢰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비판이 나온다.
충북 충주시에 따르면, 지역 내 한 농협 지점장은 최근 석 달간 조합원 등 다른 사람들의 명의를 도용해 종이형 지역화폐인 '충주사랑상품권' 1천만 원어치를 부당하게 구매했다. 충주사랑상품권은 10% 할인된 금액으로 1인당 월 70만 원까지만 구매할 수 있도록 한도가 정해져 있으나, 이 지점장은 타인의 명의를 이용해 구매 제한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농협 자체 감사 결과, 이 지점장은 사들인 상품권을 자신의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사용한 것처럼 꾸며 매출을 일으킨 뒤, 이를 다시 은행에서 현금으로 환전하는 방식으로 세금으로 지원되는 할인액 10%(약 100만 원)를 부당하게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내부 고발을 통해 알려졌으며, 해당 농협은 지난달 21일 자로 이 지점장을 즉시 대기 발령 조치하고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해당 지점장은 명의를 빌린 조합원들의 동의를 구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은 사용 내역 추적이 어려운 종이형 지역화폐의 구조적 취약점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카드나 모바일형과 달리 누가 어디서 사용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종이 상품권은, 가맹점주가 허위 매출을 일으켜 할인 보조금을 빼돌리는 '상품권 깡' 범죄에 쉽게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충주시는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해 종이 상품권 발행을 유지해왔으나, 이번 사건으로 관리 시스템에 허점이 뚫린 셈이다.
충주시 관계자는 "판매 대행점에서 발생한 심각한 도덕적 해이"라며 "지점장의 과거 구매 내역까지 모두 조사하는 한편, 조만간 경찰에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해 불법 행위의 전체 규모와 추가 공모자 여부 등을 명확히 밝힐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