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13일 일본 니가타현에서 열리는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추도식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참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조건으로 일본이 약속했던 추모 조치가 '강제노역'이라는 핵심 표현을 둘러싼 이견으로 2년째 파행을 맞으면서,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이중적 태도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한일 관계 개선을 추진해 온 현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양국 관계의 민감한 뇌관임을 재확인시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4일 "추도사에 담길 내용 중 노동의 강제성에 관한 구체적인 표현에 대해 일본 측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며 불참 배경을 공식 확인했다. 정부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로 노역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적절히 표현되어야만 진정한 추모의 격을 갖출 수 있다"는 입장을 일본 측에 수차례 전달했으나, 일본은 끝내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측은 "강제노역"이라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혹독한 환경에서 노역했다" 또는 "한반도 출신 노동자"와 같은 모호하고 완화된 표현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갈등은 예견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본은 2024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우리 정부의 동의를 얻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정보센터 설치 등을 통해 강제노역 희생자들을 기리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이는 2015년 군함도(하시마) 등 근대산업시설 등재 당시에도 강제노역 사실을 명시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이를 지키지 않아 비판받았던 전례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러나 일본은 등재 성공 이후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며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기존의 태도로 회귀했다.
결국 정부는 일본이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강제동원의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키고 일본의 '역사 지우기' 시도에 들러리를 서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 별도의 추도식을 열어 넋을 기릴 예정이다. 이는 일본의 형식적인 추모 행사와는 별개로, 강제동원의 비극을 기억하고 피해자들을 올바르게 추모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사태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한일 관계 개선 흐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과거사 문제와 미래지향적 협력을 분리하는 '투트랙'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이 역사 문제에 대해 이처럼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이상 양국 관계의 근본적인 진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사도광산의 약속 파기는 단순한 외교적 마찰을 넘어, 미래 세대에 역사의 진실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양국의 근본적인 시각차를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