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희생자 유족들이 "4·3은 김일성의 지시"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태영호 전 국회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선고가 재차 연기됐다.
제주지방법원 민사부는 오늘(22일) 오후로 예정됐던 해당 소송의 선고 공판 기일을 오는 11월 10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법원이 선고 기일을 다시 잡으면서 4·3 유족들이 2023년 3월 소송을 제기한 이후 1심 법원의 판단은 다음 달로 미뤄지게 됐다.
이 재판의 선고가 연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재판부는 당초 지난해 7월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를 예고했으나, 태 전 의원 측에서 변론 재개를 신청하며 법적 방어권 행사를 요구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추가적인 심리가 진행됐고, 이후 다시 잡힌 선고 기일이 바로 오늘(22일)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구체적인 연기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다시 한번 기일을 연기했다.
이번 법적 분쟁은 2023년 2월, 당시 국민의힘 최고위원 경선 후보였던 태 전 의원이 제주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한 발언에서 비롯됐다. 태 전 의원은 당시 "제주 4·3 사건은 명백히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고 주장해 제주 사회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는 4·3 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국가적 노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으로 해석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제주4·3희생자유족회를 비롯한 4·3 관련 단체들은 "태 전 의원의 발언은 수십 년간 이뤄진 4·3의 진실 규명 노력을 폄훼하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해당 발언이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으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2차 가해"에 해당한다며, 태 전 의원을 상대로 3,000만 100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주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청구 금액에 포함된 100원은 금전적 보상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고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유족들의 상징적인 의지를 담고 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54년 9월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으며, 2003년 채택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국가 공권력의 과도한 투입으로 인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또한 2003년 당시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해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태 전 의원의 주장은 이와 같은 정부의 공식 조사 결과와 4·3 특별법의 기본 정신에 배치되는 것이어서, 재판부가 어떠한 법리적 판단을 내릴지 초미의 관심이 쏠려왔다. 1심 선고가 다음 달로 또다시 연기됨에 따라, 4·3 유족 측은 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며 향후 대응 방안을 고심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