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타결된 한미 상호 관세 합의의 후속 협상이 두 달 넘게 표류하는 가운데, 미국이 기존 합의안을 넘어선 수준의 요구를 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협상 전망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미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증액과 함께,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일본식 투자 모델" 수용까지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우리 정부의 셈법이 한층 복잡해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최근 한국 정부 측에 기존에 약속한 3,500억 달러의 투자금을 일본이 약속한 5,500억 달러에 근접한 수준까지 증액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단순한 액수 문제를 넘어, 사실상 합의의 판을 새로 짜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어 파장이 크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측은 한국이 일본과 동일한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명확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기준으로 삼는 "일본식 모델"은 우리에게 상당한 부담을 안기는 독소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앞서 일본은 5,500억 달러를 미국이 지정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투자 원금 회수 후 발생하는 이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이러한 수익 배분 구조는 투자 위험은 모두 부담하면서 과실 대부분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것과 다름없어, 우리 정부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현재 한미 양국은 최초 합의안의 세부 사항을 놓고도 팽팽한 이견을 보이며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미국은 3,500억 달러의 투자금 대부분을 직접적인 현금 투자 방식으로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반면, 우리 측은 외환 시장에 미칠 충격 등을 고려해 대출 보증 방식을 고수하며 맞서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시각차로 인해 협상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증액과 조건 변경이라는 새로운 압박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이러한 압박 기조에 힘을 싣고 있다. 그는 최근 백악관에서 "일본은 5,500억 달러, 한국은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데, 모두 선불(up front)"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관세 부과를 통해 자신이 거둔 성과를 과시하는 동시에,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며 한국 측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백악관이 WSJ에 "합의 내용을 미세 조정하는 것"이라며 수위 조절에 나서는 듯한 입장을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은 협상 전반에 흐르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시켜 준다.
결국 우리 정부는 더 큰 외교적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미국의 요구를 무작정 수용할 경우 막대한 국부 유출과 경제적 부담을 피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거부할 시에는 어렵게 합의한 관세 인하 혜택이 무효화되고 한미 관계 전반에 냉기류가 흐를 수 있다. 교착 상태가 길어질수록 우리 수출 기업들의 불확실성만 커지는 만큼, 국익을 지키면서도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리적인 접점을 찾는 정부의 섬세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