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경쟁의 판도를 뒤흔들 '세기의 동맹'이 서울에서 성사됐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방문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연간 100조 원 규모에 달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의향서(LOI)를 전격 체결했다. 이는 특정 기업 간의 부품 공급 계약을 넘어,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해 한미 대표 기업들이 기술 패권을 함께 쥐고 가겠다는 선언으로 평가된다.
샘 올트먼 CEO는 지난 1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연쇄적으로 회동하고, 자사가 추진 중인 700조 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 '스타게이트'에 필요한 HBM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맺었다. 오픈AI가 양사에 요청한 HBM 물량은 연간 1,000만 장 규모로, 금액으로 환산 시 약 100조 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SK하이닉스 전체 매출의 1.5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매출과 맞먹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오픈AI가 이처럼 한국의 두 반도체 기업에 '올인'하는 이유는 HBM 시장에서 이들이 가진 압도적인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 때문이다. 올해 2분기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79%에 달한다. AI 연산의 핵심인 GPU 성능을 극대화하는 HBM의 안정적인 확보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하는 만큼, 최대 경쟁력과 생산 능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을 핵심 파트너로 낙점한 것이다.
이번 삼각 동맹 체결의 자리에는 이재명 대통령도 함께했다. 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올트먼 CEO와 이재용, 최태원 회장을 접견하고, 이번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양사가 HBM 생산량을 대폭 늘리기 위한 설비투자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현실을 고려해, "독점의 폐해가 없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를 달아 '금산분리' 규제 완화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 AI 산업 주도권 확보를 위해 기업의 투자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인공지능 개발은 인류가 금속을 개발한 것과 거의 비슷한 엄청난 결과를 빚을 것"이라며 AI 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올트먼 CEO는 "한국과 협력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AI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 선한 영향력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다만, 산업계 일각에서는 700조 원이라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규모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협약은 K-반도체가 AI 시대의 단순한 부품 공급자를 넘어, 글로벌 AI 생태계의 심장부를 책임지는 핵심 동맹으로 격상되었음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