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우 성향으로 ‘여자 아베’라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민당 신임 총재가 총리로 지명될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졌다. 자민당의 오랜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이 26년 만에 연합 구도를 공식적으로 파기했기 때문이다.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는 11일 다카이치 총재와의 회담 후 “자민당과의 연정을 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와 돈 문제에 대해 충분한 해명이 없었다”며 탈퇴 이유를 분명히 했다. 자민당 내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들을 다카이치가 요직에 기용한 점,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이 미흡했다는 점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공명당의 이탈은 1999년 자민당과의 연정이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당시 연정은 보수 자민당과 불교계 기반의 중도정당 공명당이 손을 잡으며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한 정치적 기반이었다. 그러나 이번 결별로 자민당은 단독 과반 확보가 어려워졌고, 차기 총리 지명 과정에서 정국이 요동칠 전망이다.
공명당은 “정치자금 투명성에 대한 다카이치 총재의 입장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다카이치는 전날 NHK 인터뷰에서 “자민당-공명당 연립은 일본 정치의 기본 축”이라며 연정 유지를 희망했지만,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다카이치는 자민당 강경 보수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계보를 잇는 정치인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외국인 참정권 반대, 헌법 개정 추진 등 우경화 행보로 지지층을 결집시켜왔다. 그러나 이번 정치자금 스캔들과 연정 붕괴로 ‘아베의 후계자’ 이미지는 타격을 입게 됐다.
현재 일본 국회 의석 구도를 보면, 야권 연대가 현실화될 경우 다카이치의 총리 지명은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일본유신회 등 주요 야당 3당의 합산 의석은 210석으로, 자민당의 196석을 앞서고 있다. 공명당이 야당 측에 협조할 경우 자민당 단독 정권은 유지가 불가능하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자민당 내 권력 구조의 균열로 본다. 당내에서는 “보수 결집을 위해 공명당과의 연정을 복원해야 한다”는 온건파와 “정권을 재편해도 다카이치 중심의 강경 노선을 이어가야 한다”는 강경파가 맞서고 있다.
다카이치는 아직 공식적인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연정 붕괴로 총리 지명 가능성이 급격히 줄어든 만큼 내부 압박이 커질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자민당 장기 집권 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정치적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